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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디어 번역과 해제

대부(Don)없는 연예계 : K-POP에 지지마라, 일본 음악 업계는 변할 것인가

by joan0xx3 2026. 6. 23.

대부(Don)없는 연예계

: K-POP에 지지마라, 일본 음악 업계는 변할 것인가

 

글 | 다카하시 다이스케(高橋大介)

옮긴이 | 김현지

출처 | 『문예춘추(文藝春秋)』 2026년 3월호

 

2020년대 J-POP 대표 아티스트 YOASOBI © CEIPA / MUSIC AWARDS JAPAN 2025

 

 

‘대부’ 없는 연예계

  1월 20일, 그랜드프린스 호텔 신타카나와의 대연회장 '곤룡'과 '호쿠신'을 대관해 'CEIPA(일반사단법인 문화·엔터테인먼트 산업 진흥회)'의 신년 인사 교류회가 열렸다. 일본 음악 산업의 주요 5개 단체가 2023년 12월에 새롭게 설립한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은 3천 명에 달하는 업계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이날 '스페셜 게스트'로 소개되며 무대에 오른 인물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였다. 고베대 재학 시절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했고, 일주일 전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드럼 세션을 선보일 만큼 음악 애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저는 일본 음악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작년에 확정된 550억 엔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을 활용해 콘텐츠 산업의 해외 매출 20조 엔을 목표로 삼겠습니다. 향후 다년간의 지원을 약속드리며, 민관 협력을 통해 강력히 뒷받침하겠습니다. 모두 힘을 모읍시다! 파이팅합시다!"

 

 

  금빛 병풍을 배경으로 다카이치 총리는 양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열기 가득한 연설에 업계 관계자들의 얼굴도 상기되는 듯했다.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 주도로 열린 일본 성장전략회의 제1차 회의에서는 17개 전략 분야가 제시되었는데, AI·반도체, 조선 등과 함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아우르는 콘텐츠 산업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2024년 기준 일본 콘텐츠 산업의 해외 매출액은 6조 엔에 달하며, 반도체와 철강을 제치고 자동차 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성장했다. 음악 역시 이 범주에 속하며, '더욱 활발한 해외 진출을 위한 환경 조성'이라는 종합 경제 대책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산업에 비하면, 일본의 음악 비즈니스는 이제 막 구조 개혁의 서막을 연 것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연예계 대부의 세대교체

  이보다 보름쯤 전인 지난해 섣달그믐날(12월 31일) 방송된 'NHK 홍백가합전'은 예년보다 훨씬 큰 화제를 모았다.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B'z의 이나바 코시가 펼친 협연, 아라이 유미 시절의 명곡을 선보인 마츠토야 유미의 무대가 돋보였다. 여기에 더해 2021년 말 딸 칸다 사야카를 잃고 급히 출전을 취소했던 마츠다 세이코가 5년 만에 복귀해 홍백 양 팀의 마지막 무대 이후 최종 엔딩을 장식했고, 야자와 에이키치가 깜짝 등장해 NHK 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무대 뒤에서도 거물급 '깜짝 게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방송 당일 오후 3시경, 행사장인 NHK 홀 인접 식당에 버닝 프로덕션 창업자인 스호 이쿠오(85세) 씨가 나타난 것입니다. 예년에는 그곳에서 스호 씨를 중심으로 일본음악사업자협회(음사협) 간부들이 홍백가합전을 관람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연예계의 대부인 그에게 연말 인사를 건네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호 씨는 2024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고급 실버타운에 입주했고, 그해 홍백가합전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현장에 나타나자 레코드 회사 간부들이 서둘러 달려가는 등 인사를 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음악 업계 관계자)

 

  고이즈미 교코를 발굴한 것으로 잘 알려진 스호는 연예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홍백가합전의 엔카 가수 섭외에도 깊이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사잔 올 스타즈의 초기 곡들에 대한 음악 출판권을 확보하는 등 저작권 비즈니스에도 발 빠르게 눈을 뜬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곧 대부의 현장 복귀를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NHK 관계자의 말은 달랐다.

 

  "생방송까지 남아있지는 않았고, 1시간 정도 머물다 돌아갔습니다. 지난해 10월 NHK 음악 프로그램인 '우타콘' 녹화 현장을 찾아 예년처럼 프로듀서에게 엔카 가수의 홍백 출연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그때 후임 사장인 아들 쇼고 씨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겠지요."

 

  마침 칠순을 맞은 버닝 소속 고 히로미가 홍백가합전 은퇴를 선언하면서, 소속사로서는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무대가 되었다. 또한 스호의 오랜 벗이자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고(故) 가와무라 다쓰오(향년 84세)가 이끌던 기획사 '케이대시(K-Dash)' 소속으로 홍백 사회를 세 번이나 맡았던 사카이 마사아키가 특별 무대에 올라 더 스파이더스 시절의 명곡 메들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케이대시는 연말에 업계 관계자들에게 사장 교체를 알리는 인사장을 돌렸다.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린다"는 내용과 함께 올해 1월 1일 자로 신임 사장 취임을 알린 이는 카와무라의 아들 카와무라 타이치였다. 그는 대형 광고 대행사인 하쿠호도를 퇴사하고 가업을 이어받았다.

 

  "홍백가합전 현장에서도 사카이 씨의 소속사 신임 사장 자격으로 마지막까지 남아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하쿠호도 재직 시절 유능한 영업 사원이었다고 들었는데, 2세 경영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겸손한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절대적이던 버닝과 케이대시가 다음 세대로 바통을 넘기다니, 정말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감회에 젖게 하는 연말이었습니다."

 

 

홍백가합전과 레코드 대상

  전후 일본의 음악 업계는 주둔군 대상 흥행으로 첫발을 내디딘 와타나베 프로덕션(나베프로)을 필두로 대형 기획사들이 견인해 왔다. 기획사가 신인을 발굴하고 인기 작사·작곡가에게 이미지에 맞는 곡을 의뢰한 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홍백가합전이나 민영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과 손잡고 인기 가수로 키워내는 방식이었다. 즉, 일본 음악 업계는 무대 뒤의 정치적 수완이 십분 발휘되는 연예계 그 자체였다.

 

  그 후 요시다 타쿠로나 이노우에 요스이처럼 직접 작사·작곡을 하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와 밴드들이 등장하며 인기 차트의 주도권이 그들에게 넘어갔다. '가수의 시대'에서 '아티스트의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TV 골든타임에서 음악 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췄고, 전 국민이 흥얼거릴 수 있는 메가 히트곡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홍백가합전의 시청률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고, 급기야 2023년에는 2부 시청률이 역대 최저인 31.9%까지 떨어졌다. 또 하나의 연말 음악 축제인 TBS '빛나는! 일본 레코드 대상(이하 레코드 대상)'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2015년 대상을 차지했던 '산다이메 J Soul Brothers from EXILE TRIBE'의 소속사 LDH가 선정 과정에 막강한 입김을 자랑하는 버닝 측에 '프로모션 업무 위탁비' 명목으로 1억 엔을 건넸다는 사실이 <주간문춘>을 통해 보도되면서 시상식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지난해 홍백가합전은 2부 평균 가구 시청률 35.2%를 기록하며 3년 만에 35% 선을 회복했다. 레코드 대상 역시 현재 가장 기세가 좋은 밴드 'Mrs. GREEN APPLE'이 3연패를 달성하며 시청률이 전년도를 미세하게나마 웃도는 등, 연말 '2대 음악 축제'의 인기가 하락세를 멈춘 모양새다.

 

  그 반등의 이유는 다름 아닌 대중, 특히 음악 소비의 핵심 층인 젊은 세대와의 괴리를 좁혔기 때문이다. 이 2대 음악 축제는 왜 변화를 택했을까? 사실 여기에는 반년 전 교토에서 개최되며 업계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한 행사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바로 지난해 5월, '아시아판 그래미 어워드'를 표방하며 첫발을 내디딘 'MUSIC AWARDS JAPAN (MAJ) 2025'다.

 

  이 시상식의 주최는 기사 서두의 신년회를 열었던 'CEIPA'였으며, 문화청의 협력과 도요타의 메인 스폰서 후원을 받는 등 사실상 '올 재팬(All Japan)' 체제로 구성되었다. 국내외 카테고리를 합쳐 총 62개 부문의 상을 마련해 세계적인 규모의 음악 시상식임을 과시했다.

 

  주요 6개 부문의 수상 결과가 발표된 5월 22일, 그랜드 세리머니의 라인업은 무척 화려했다. 1979년 일본 밴드 최초로 월드 투어를 돌았던 YMO의 호소노 하루오미가 개회 선언을 했고, 인기 배우이자 음악 활동도 병행하는 스다 마사키가 단독 MC를 맡았다. 객석에는 일반 팬 대신 Mrs. GREEN APPLE, Creepy Nuts, 후지이 카제 등 현재 J-POP 시장을 선도하는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했다. 무대 위에서도 이들을 비롯해 YOASOBI, 챤미나, 새로운 학교의 리더즈 등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야자와 에이키치의 특별 출연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날 세리머니는 NHK 생중계는 물론 YouTube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그렇다면 왜 일본 음악 업계는 하필 이 타이밍에 새로운 시상식을 출범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발단은 CEIPA 설립 약 1년 전, 롯폰기에서의 한 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쓰루톤탄 회담

  롯폰기의 복잡함을 상징하는 '돈키호테' 인근, 심야까지 술잔을 기울인 이들의 해장 맛집으로 사랑받는 우동 전문점 '츠루톤탄'. 이곳의 프라이빗 룸에 일본 음악 업계 주요 5개 단체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본레코드협회 회장이자 소니뮤직 CEO인 무라마쓰 슌스케, 일본음악사업자협회(음사협) 회장이자 연예기획사 재팬 뮤직 엔터테인먼트 사장인 다키후지 마사토모, 일본음악제작자연맹(음제연) 이사장이자 사카낙션 등이 소속된 힙랜드 뮤직 코퍼레이션 사장인 노무라 타츠야, 콘서트프로모터즈협회(ACPC) 회장이자 디스크 가레지 회장인 나카니시 다케오, 그리고 일본음악출판사협회(MPA) 회장이자 USEN-NEXT 그룹 산하 음악 사업 회사 유즈 뮤직 사장인 이나바 유타카. 레코드 회사, 매니지먼트사, 공연 기획사, 저작권 관리 회사 등 각자의 권리를 둘러싸고 날 선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날의 의제는 오직 단 하나, '일본 음악 업계의 미래'였다.

 

  참석자 중 한 명인 노무라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음악 소비 방식이 CD에서 스포티파이 같은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로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전 세계 누구나 쉽게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열린 셈이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평소에는 서로 권리를 주장하며 좀처럼 교류하지 않던 우리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로소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것입니다. 사실 일본 음악 시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였기에 내수만으로도 충분히 비즈니스가 성립했고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갈라파고스화'되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것이죠."

 

 

K-POP의 비약적인 해외 수출 성장

  갈라파고스화는 음악 청취 환경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 세계 음악 시장이 발 빠르게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로 재편되는 동안, 일본은 여전히 CD 판매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이 역시 공급자들이 내수 시장에만 안주했던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본레코드협회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CD 앨범 생산량은 2015년 1억 1,270만 장에서 2024년 6,250만 장으로 10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일본이 이렇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이, 세계 시장을 향해 맹렬히 타전한 것은 바로 한국이었다.

 

  "K-POP이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인지되며 하나의 확고한 장르로 자리 잡았고, 한국 아티스트가 미국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내부에서도 '어라? 일본 음악도 질적으로 우수하고 해외 팬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쓰루톤탄 회담에서 5개 단체가 하나로 뭉쳐 해외 시장을 공략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CEIPA입니다."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국가 차원에서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했다. 5,000억 원 규모의 문화산업진흥기금을 조성해 콘텐츠 산업에 집중 투자를 단행하며, 국책 사업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일본 진출사를 살펴보면, 2001년 BoA(보아)의 일본 데뷔에 이어 2004년 NHK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영되며 제1차 한류 붐이 일었다. 2010년에는 카라(KARA)와 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하며 본격적인 K-POP 붐을 이끌었고, 십여 년이 흐른 지금 K-POP은 일본 음악 시장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한국 음악 부문의 해외 수출액은 2016년 4억 4,000만 달러에서 2022년 9억 6,000만 달러로 두 배 이상 훌쩍 뛰었다.

 

 

시장을 마비시킨 코로나

  일본 내부에서도 관민이 하나 된 음악 수출의 필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2021년 4월 문화청 장관으로 취임한 작곡가 도쿠라 슌이치다. 핑크 레이디, 야마모토 린다 등 수많은 대형 가수의 히트곡을 탄생시켰고, JASRAC(일본음악저작권협회) 회장과 레코드 대상 심사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도 홍백가합전의 피날레 합창곡 '석별의 정(蛍の光)' 지휘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그야말로 쇼와 시대를 대변하는 히트 메이커이자 업계의 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1980년대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런던에서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일찍부터 해외 무대에서 활약해 온 국제파 음악가이기도 하다. 도쿠라 장관이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엔터테인먼트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해 왔습니다. 반면 일본은 쇼와 시대인 70~80년대에 이미 유럽 국가들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시장 규모를 달성했고, 한국보다 10배나 큰 시장을 자랑했기에 안일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장이 마비 상태에 빠지고 말았죠. 한국은 이미 그 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주목해 글로벌 진출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멈춰 있던 4년 동안 한국 음악은 전 세계로 실시간 스트리밍되었지만, 일본은 그 흐름에 완벽히 뒤처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일본 음악 산업의 글로벌 유통을 부활시키기 위해 국가가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요 5개 단체가 주도적으로 움직여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도쿠라 장관과 5개 단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사람은 당시 MPA 부회장이자 챤미나 등이 소속된 레인보우 엔터테인먼트 사장인 구리타 슈이치였다. 50년 이상 매니지먼트 업계에 몸담아 온 그가 당시를 회상했다.

 

  "도쿠라 씨가 장관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 축하드립니다만 앞으로 꽤 고생하시겠네요'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일본의 콘텐츠를 글로벌 차원에서 산업화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시더군요. 저 역시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에, 신임 장관과 음악 업계를 제대로 연결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구리타는 한국 음악계가 어떻게 세계 진출을 이뤄냈는지 그 과정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목격한 인물이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그리고 지난해 홍백가합전에 출전한 에스파(aespa) 등 최정상급 아이돌을 배출한 한국의 대형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의 일본 법인 초대 사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보아(BoA)의 대히트 이면에서

  "1998년 무렵, SM 엔터테인먼트가 두 번째로 론칭한 S.E.S.라는 3인조 걸그룹의 일본 진출을 돕게 되어 한국으로 건너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를 만났습니다. 그의 비전은 이미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있었습니다. 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았고, 창조성과 제작 역량 면에서는 당시 일본이 더 앞서 있었습니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우선 일본 시장에서 노하우를 배운 뒤, 궁극적으로는 미국이나 중국 같은 거대 시장으로 진출해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S.E.S.는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만, 그때 '다음 타자로 준비 중인 아이가 있습니다'라며 소개받은 가수가 바로 BoA였습니다. 마침 에이벡스(Avex)가 그녀에게 강한 흥미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계약을 원했죠. 제 작은 회사에 소속시키기에는 그릇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SM 엔터테인먼트와 에이벡스, 요시모토 흥업, 그리고 제가 힘을 합쳐 현지 법인인 SM 엔터테인먼트 재팬을 공동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BoA는 일본에서 말 그대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뒤이어 동방신기가 그 배턴을 이어받았다. 당시 SM 엔터테인먼트가 보여준 전략적 행보를 보며 구리타는 '이것이 진정한 비즈니스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우리와 에이벡스는 SM 엔터테인먼트 측에 일본 음악계와 연예계의 역사, 장래성, 그리고 산업 구조의 디테일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일본은 거대한 시장이었기에 마케팅 기법과 룰, 프로모션 방법론 등을 모두 전수했죠. 초기에는 그들도 철저히 배우겠다는 자세였기 때문에 BoA의 계약 과정에서 큰 마찰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BoA가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부터는 스케줄 조정조차 매우 까다로워졌습니다. SM의 전략적 포커스는 이미 일본을 넘어 더 넓은 해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들의 비즈니스 감각은 지극히 냉혹할 만큼 철저했습니다. 한국이 일본 이상으로 철저한 계약 사회이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긴 했지만, 뼈아픈 경험을 통해 '우리도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저런 냉철한 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SM 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은 약 2,800억 엔으로, 에이벡스의 5배에 달한다.

 

  구리타는 주요 5개 단체 수장 모두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쿠라 장관의 의지를 전달받은 그는 각 단체 수장들과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5인방 중 한 명인 이나바 MPA 회장이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아티스트 측면을 보면 YOASOBI, 후지이 카제, 새로운 학교의 리더즈 등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글로벌 실적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우리 비즈니스 시스템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고 있어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위기감이 팽배하던 시기였습니다. 마침 그 타이밍에 도쿠라 장관의 제안을 받게 되면서, 업계 전체가 본격적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단번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앞서 언급한 '츠루톤탄 회담'이 성사되었고, CEIPA의 설립과 함께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음악 시상식을 개최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2023년 12월 일반사단법인으로 정식 출범한 CEIPA에는 5개 단체 수장과 구리타가 이사로 취임했다. 구리타는 설립 직후 열린 첫 이사회 풍경을 생생히 기억했다.

 

 

5개 단체 수장이 양보하며 다가서다

  "5개 주요 단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손을 맞잡은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회의석상에서조차 말이 별로 없었죠. 그래서 초창기에는 이사회가 끝난 뒤 무조건 술자리를 마련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토론을 거듭했고, 점차 서로의 비전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시상식의 뼈대와 글로벌 진출 전략이 구체화되었습니다."

 

  새 시대의 불씨가 될 글로벌 시상식의 개최지는 깃발을 든 도쿠라 장관의 문화청이 2023년 이전한 교토로 결정되었다. 세계를 향한 문화적 발신력 또한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교토에서 대형 이벤트를 개최하는 데에는 물류를 비롯한 여러 현실적인 난관이 따랐다. 행사장은 교토 내 최대 규모인 '교토회관(롬 시어터 교토)'을 대관했지만 수용 인원은 2,000명 남짓에 불과했다. 게다가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교토에서 대규모 숙박 시설을 확보하는 것도 큰 골칫거리였다.

 

  "도쿄에서만 1,500명에 달하는 참석자와 스태프가 이동해야 했기에,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연인원 5,000실 규모의 숙소를 간신히 확보했습니다."

 

  새로운 시상식이 음악 업계 관계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대목은 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점이다. 빌보드 재팬을 비롯한 주요 음악 차트로부터 CD 판매량, 스트리밍 재생 수 등의 실데이터를 제공받아 객관적인 지표로 후보를 선정했다. 이후 5,000명 이상의 음악 관계자 투표를 거쳐 최종 수상곡과 아티스트를 결정했다. 이 모든 검증 과정은 미국 그래미 어워드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회계·컨설팅 펌인 딜로이트 토마츠가 맡아 투명성을 보증했다. 오랫동안 레코드 대상 심사위원장을 지냈던 도쿠라 장관은 음악 시상식의 권위에 대해 남다른 소신이 있었다.

 

  "레코드 대상 심사위원 수가 짝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표가 팽팽하게 갈리다 결국 마지막에 심사위원장이 던지는 한 표로 대상이 결정되곤 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모든 과정이 이미 정해진 각본처럼 짜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중들 역시 그러한 기류를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새로운 시상식을 기획하면서 이 부분만큼은 철저히 뜯어고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은 의심할 여지 없는 정론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노미네이트된 인기 아티스트의 매니저로부터 "교토까지 내려가면 확실히 상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다. 주최 측은 "당일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주요 6개 부문 중 하나인 '최우수 뉴 아티스트상'의 경우, 시상식에 참석했던 Number_i나 FRUITS ZIPPER가 아닌 유일한 불참자였던 tuki.에게 돌아갔다. 세리머니 무대에서 4곡 연속 메들리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뽐낸 챤미나 역시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쳤다. 구리타조차도 내심 '수상을 못해 아쉬웠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로들에게 도리를 다하다

  행사 개최를 앞두고 CEIPA 이사진이 심혈을 기울인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예의범절', 즉 업계 내 의전이었다. 앞서 언급한 스호, 카와무라 외에도 타나베 에이전시 타나베 아키노리 회장, 어뮤즈 오오사토 요히코 회장, 스페이스 샤워 나카이 다케시 창업자, 후지 퍼시픽 뮤직 아사츠마 이치로 명예회장 등 지금의 일본 음악계를 일궈낸 원로들에게 깍듯이 도리를 다하는 일이었다.

 

  와타나베 프로덕션의 와타나베 미사 명예회장을 직접 찾아갔다는 이나바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분들은 각 단체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들이기에, 사전에 시상식의 취지와 CEIPA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는 데 이사들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원로분들이 흔쾌히 지지해 주시려면 최대한 빨리 찾아뵙는 것이 도리이고, 설명이 늦어지면 잡음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사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일주일 안에 모든 분을 찾아뵙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미사 명예회장님은 5개 단체 중 하나인 MPA의 창립 멤버이자 현직 고문이시기에 제가 직접 찾아뵀습니다. 명예회장님은 1970년대에 사와다 켄지의 해외 진출이나 국제 음악상 제정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신, 그야말로 해외 진출의 선구자십니다. 그렇기에 '내가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이 이어받아 주었다'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다른 원로분들 역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식의 간섭이나 훈수는 일절 없으셨습니다."

 

 

TV 아사히와의 직접 담판

  나아가 전 세계로 송출될 세리머니의 연출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중대한 과제도 남아 있었다. 시상식 중계는 NHK로 확정되었지만, 프로그램 제작 및 저작권은 CEIPA 측이 소유하기 때문에 총연출자 역시 CEIPA에서 직접 섭외해야 했다. 이나바 회장이 당시의 비화를 밝혔다.

 

  "당연히 대형 음악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필요했습니다. 이사들끼리 머리를 맞댄 결과, 감각이 젊고 아티스트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력을 갖춘 인물로 TV 아사히 '뮤직 스테이션'의 도네가와 히로키 프로듀서가 적임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NHK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연출을 경쟁사인 TV 아사히 피디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사들이 '다 같이 쳐들어가자'며 무라마쓰, 노무라 씨를 포함한 CEIPA 멤버 전원이 TV 아사히 본사로 향했습니다."

 

  "사전에 방문 목적을 알리면 문전박대당할 것이 뻔해 무작정 찾아갔더니, 당시 상무였던 니시신 현 사장님을 비롯해 임원 대여섯 분이 계시더군요. 저희가 대뜸 '일본 음악계의 미래를 위해 도네가와 프로듀서를 빌려주십시오!'라고 간청하자 무척 당황하시며 '검토할 시간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주쯤 지났을까, '열심히 해보시라'는 격려와 함께 승낙의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메가폰을 잡은 도네가와 프로듀서는 세리머니 오프닝에서 교토에 집결한 아티스트들의 당일 모습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내고, 일본 해외 진출의 선구자인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의 명곡 '라이딘(Rydeen)'을 현대 아티스트들이 리믹스하는 무대를 연출해 선배 세대를 향한 깊은 존경을 표했다. 단독 MC를 맡은 스다 마사키는 동세대 아티스트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었고, 이는 '업계 발전에 공헌한 아티스트를 진심으로 예우하고 찬양한다'는 시상식의 핵심 콘셉트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한편, 구리타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짚었다.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이라고 부르기엔 갈 길이 멉니다. 이번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주었지만, 앞으로 해외에서 더욱 주목받는 시상식으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향후 세대구조의 변화를 고려할 때 아세안(ASEAN) 시장의 급성장은 기정사실이므로, 그들과의 연계를 한층 더 강화하고 싶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뒤 교토의 클럽 '마하라자 기온'에서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뒤풀이. 단상에 오른 도쿠라 장관은 업계가 하나 되어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을 높이 평가하며, "그렇게 사이가 나빴던 5개 단체가 드디어 장벽을 허물고……"라고 농담을 던져 참석자들의 쓴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구리타가 웃으며 회상했다.

 

  "각 단체의 설립 배경이 다르고 저작권 처리 문제 등으로 이견이 많았던 것이 그동안 장벽으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죠. 물론 도쿠라 장관님의 뼈 있는 농담이었습니다만,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5개 단체가 전면적으로 협력한 것은 업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웃음)"

 

 

상승세 타는 J-POP 청취율

  일본 음악계는 오랜 기간 세계 음악 시장의 흐름에서 동떨어져 폐쇄적인 '갈라파고스 동네'로 전락해 있었다. 하지만 'K-POP의 약진'과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외부 충격을 겪으며 고군분투한 끝에, 마침내 단결하여 글로벌 시장을 향해 묵직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MAJ 시상식은 그 눈부신 도약의 첫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일본레코드협회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CD 판매량과 스트리밍 수익 등을 합친 국내 음원 관련 매출은 큰 변화 없이 정체되어 2024년 기준 약 3,300억 엔에 머물렀다. 반면, 콘서트프로모터즈협회(ACPC) 조사에 따르면 2024년 라이브 콘서트 매출은 6,121억 엔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두 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즉, 대중의 음악 소비 패턴이 '구독형 서비스로 가볍게 음악을 듣고, 퀄리티 높은 라이브 공연을 경험하는 데 지갑을 여는' 방식으로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현상이 아닌 전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노무라 이사장의 설명이다.

 

  "과거에는 3,000엔짜리 CD 한 장에 10곡 정도가 수록되어 있었죠. 곡당 300엔꼴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구독형 서비스 생태계에서는 한 곡을 몇 번 들어봤자 아티스트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1엔 남짓에 불과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든 음악의 가치가 과거의 300분의 1 이하로 폭락한 겁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업계 전체가 생존의 기로에 내몰린 셈이죠."

 

  "결국 내수 시장의 한계를 넘어 해외로 파이를 키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최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일본 음악의 인기가 폭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진입 장벽이 높았던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서도 Ado, 요네즈 켄시, YOASOBI, BABYMETAL 같은 아티스트들이 아레나급(1~2만 석 규모) 공연장을 연일 매진시키는 쾌거를 이루고 있습니다. 라이브 공연에 투자를 집중하면 팬들과의 유대감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그 강력한 파급 효과 덕분에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음원 플랫폼에서도 J-POP의 재생 횟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데이터가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올해 6월 13일, 제2회 MAJ 시상식은 교토를 떠나 도쿄 오다이바에 새롭게 준공된 도요타 아레나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릴 예정이다. 이미  본격적인 준비 단계에 돌입했으며, 다음 시상식에서는 시상 부문을 70개 이상으로 대폭 확대해 규모를 더욱 키울 계획이라고 한다.

 

  과연 일본의 음악 콘텐츠 산업은 이 거대한 흐름을 타고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막강한 비즈니스로 도약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필자 | 다카하시 다이스케(高橋大介)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 《문예춘추》를 통해 일본 연예계와 음악 산업의 이면을 통찰하는 글들을 선보이고 있다.

 

옮긴이 | 김현지

경희대학교 스포츠의학과 재학. 일본 아티스트 'Perfume'의 음악을 통해 J-POP을 처음 접한 이후, 대중문화를 넘어 한일 양국의 사회·문화적 현상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