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阿部幸大/아베 고다 (문화사학자/츠쿠바대학교 조교수)
옮긴이: 강현서
출처: 세카이(世界) 2026년 3월호

“당신은 준비를 하고 있는가?”
1916년 7월 16일, 기묘한 복장을 한 노신사가 정면을 가리키고 있는 일러스트가 미국 어느 신문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림에 달린 캡션은 "What Are YOU Doing for Preparedness?(당신은 준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였다. 정면을 응시하며 뿜어내는 위압감과 대문자로 강조된 “YOU”의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자면, “당신은 준비를 하고 있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에 대한 '준비'일까. 사실 그 답은 이 짧은 캡션 안에 이미 담겨 있다. ‘preparedness’라는 단어는 '준비하다'라는 동사 ‘prepare’에서 파생되었지만, 중립적인 의미의 명사 ‘preparation’과 달리 여기서는 '전쟁에 대비하다'라는 뉘앙스로 쓰였다. “전쟁에 대비하라”는 이 발상은 “평화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쟁 국가 미국’의 사상적 기반이다.
이 일러스트가 게재되고 약 1년 후,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공식 결정했다. 그사이 이 일러스트는 미 육군에 의해 “너도 미 국군에(I Want You for U.S. Army)”라는 캡션이 달린 포스터로 제작되었고, 곧 400만 장 이상이 미국 전역에 내걸리게 되었다【그림 1】.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이 초로의 남성은 합중국(United States)과 이니셜이 같은 ‘엉클 샘(Uncle Sam)’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쟁 국가 미국을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 잡았다.

전시(戰時) 상황의 ‘스파이’
흥미로운 점은, 윌슨이 의회에 참전을 요청한 시기가 첫 일러스트가 출판되고 1년 남짓 지난 후였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위해 우리가 형성하고 단련해야 할 대상은 군대가 아니라 국가 그 자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 국민은 공통의 적에 맞서 견고한 대열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개개인이 사적인 목적을 추구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으며, 모두가 단 하나의 목적을 추구할 때만 가능하다. 국가는 전 국민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각 개인이 원하는 분야가 아니라, 대의에 더욱 봉사할 수 있는 형태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회는 국가가 선발을 통해 전쟁 체제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점, 즉 각자의 능력이 국익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위치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점을 규정했다. 이는 결코 원치 않는 자들을 억지로 징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 함께 자원한 국민 가운데서 선발을 진행하는 과정일 뿐이다.
-우드로 윌슨, 「군 징집에 관한 메시지」 (1917년 5월 18일)-
윌슨은 1913년부터 1921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유럽에서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은 1914년의 일이다. 윌슨이 재선에 도전한 1916년 대통령 선거는 미국이 아직 참전하지 않은 채 유럽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치러졌고, 그는 “우리를 전쟁에서 구해낸 인물(He Kept Us Out of War)”이라는 평화주의적 슬로건을 내세워 당선되었다(참고로 그의 또 다른 슬로건 중 하나는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였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윌슨과 맞붙은 공화당 후보는 찰스 에번스 휴스였으며, 그의 배후에는 '곤봉 외교'로 유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버티고 있었다. 1909년까지 대통령을 지내고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던 루스벨트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는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된 후 '전쟁 준비 운동(Preparedness Movement)'이라는 로비 활동을 이끌었고, 대선 정국에서는 전비(戰備) 확충에 소극적인 윌슨을 ‘무책임하다’거나 ‘겁쟁이(cowardice)’라고 맹비난하며 호전파로서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전투광 루스벨트 대 평화주의자 윌슨'이라는 구도를 그리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사실 윌슨은 1915년 말부터 이미 중립 방침을 수정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를 전쟁에서 구해낸 인물'이라는 문구를 내걸기 시작한 1916년 1월 무렵부터는 오히려 ‘전쟁 준비(preparedness)’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전국 순회연설에 나섰다. 그 배경에는 독일의 잠수함이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해 미국인 128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 등이 작용했다. 어쨌든 전쟁이라는 잣대로 볼 때, 루스벨트와 윌슨의 '대립'은 각자가 구축한 정치적 이미지가 빚어낸 환상에 불과했다.
만약 유럽의 전쟁이 루스벨트 재임 시기에 발발했다면 미국은 즉각 참전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윌슨이 대통령이었던 덕분에 전쟁의 양상이 훨씬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윌슨이 두르고 있던 평화주의적 이미지가 참전을 “미국이 전쟁을 끝내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는 식의 미담으로 포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행사한 폭력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윌슨은 1916년 국방법 제정을 신호탄으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전쟁 국가 미국'의 초석이 될 법적·문화적 '전비'를 착착 갖추어 나갔다. 예컨대 참전 직후인 1917년 6월에는 ‘스파이 방지법(Espionage Act)’을 제정했는데, 이는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여기서 말하는 '스파이'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일반적인 간첩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여성들은 너무나 고결하고 지적이며 헌신적이기에, 여러분이 이 정의(참정권)를 부여하든 하지 않든 결코 헌신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권리를 부여했을 때 그녀들의 사고와 정신에 어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를 제안하는 이유는, 전장에서 우리와 세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남성 병사들이 만약 선거권에서 배제되어 있었다면 응당 제안했을 것과 완벽히 같은 논리입니다. 여성들의 임무는 바로 이 전쟁의 심장부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녀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정의로운 처사를 통해 보여준다면, 그 심장은 과연 얼마나 힘차게 고동치겠습니까.
-우드로 윌슨, 「수정헌법 제19조에 관한 상원 연설」 (1918년 9월 30일)-
전선에서 싸우는 남성 병사와 후방에서 봉사하는 여성의 공헌도를 동일선상에 놓는 전형적인 총력전의 논리다. 원문의 “this thing that is mere justice”는 다소 까다로운 표현인데, 여기서 ‘mere’는 “이것은 결코 과도한 요구가 아니라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정의'보다는 '최소한의 정의'로 해석하는 편이 적절하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심장과 고동의 비유다. 여성을 전쟁의 '심장'으로 치켜세우고, 그 고동(전의의 고양)이 곧 전쟁의 승리로 이어진다고 포장하는 고도의 프로파간다 수사(레토릭)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스파이 방지법은 오로지 국내에서 반체제적인 언론 활동을 벌이는 분자들을 구속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이를 「치안유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던 것처럼, 당시의 미국 역시 이와 유사한 사상 통제를 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1917년 6월 당시 단속의 표적이 되었던 ‘반체제적’ 의견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쟁 반대(반전)' 목소리였다.
하지만 반전(反戰) 사상을 엄밀히 어느 선부터 ‘반체제’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체제 측이 그때그때 자의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역사학자 아담 호크실드(Adam Hochschild)가 지적했듯, “전쟁은 어느 시대에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훌륭한 구실”이 된다. 스파이 방지법은 정부 입장에서 눈엣가시 같은 인사들을 체포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을 때 꺼내 드는 ‘괴롭히기용’ 장치였던 셈이다. 요컨대 정부는 단지 눈에 거슬리는 인물을 ‘스파이’로 낙인찍고 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합법적 구실을 마련하고자 이 법을 제정했다.
강제적 자원주의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시점은 1917년 4월이었다. 참전한 이상 무조건 승리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군대, 즉 수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정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1917년의 ‘선발징병법(Selective Service Act)’이다. 이 법은 21세부터 30세까지(이후 18세부터 45세까지로 수정됨)의 모든 남성에게 징병 등록을 직접적으로 의무화했다. 즉, 대상자 전원이 각 지역 관청에 출두하여 군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다.
윌슨은 포고령을 통해 징병 등록을 누락한 자는 1년 미만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앞서 언급한 ‘엉클 샘’ 포스터는 바로 이러한 법적 강제력을 상징하는 시각적 도구였다. 그러나 벌칙을 앞세운 강압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당시 윌슨이 교묘하게 동원했던 일련의 부드러운 수사학이다. 그는 징병에 등록하고 전선에 나서는 행위를 ‘의무(obligation)’이자 ‘책무(duty)’이며, 고귀한 ‘희생(sacrifice)’이자 ‘헌신(devotion)’이라고 거듭 포장했다.
윌슨의 논리에 따르면 이러하다. “이 전쟁은 막대한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결코 자발적으로 나서고 싶은 의무는 아닐 것이다. 평화를 그토록 사랑하는 우리 국민을 이 사상 최악의 전쟁터로 끌어들이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왜 참전해야만 하는가. 그는 “평화보다 권리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요컨대, 민주적이고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드는 것이 단순히 전쟁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발언의 기저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미국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둘째, 그 위협을 제거하려면 전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대서양 너머 먼 유럽 땅의 전쟁이 도대체 어떻게 미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단 말인가? 당시 미국인들 역시 당연히 품었을 법한 의문이다.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윌슨이 소환한 개념이 바로 ‘세계’라는 확장된 관점이다. “세계는 민주주의가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세계 평화는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토대 위에 세워져야만 합니다.” 즉, 민주주의와 평화는 일심동체로서 전 세계를 아울러야 하며, 이것이 위협받는다면 지구상 어디든 미국이 기꺼이 뛰어들어 싸우겠다는 논리다. 결과적으로 이 무서운 논리는 훗날 미국이 독단적으로 비민주적, 비평화적이라고 규정한 전 세계 모든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필연적으로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다.
스스로를 ‘정의의 국가’라 자부하는 합중국에서 국민이 참전을 거부할 권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윌슨은 이렇게 포장했다. “우리는 원치 않는 자들을 억지로 징집할 의도가 추호도 없다. 이는 오히려 한마음으로 자원한 국민 가운데서 선발하는 과정일 뿐이다.” 전쟁이란 국가가 가기 싫어하는 국민을 억지로 징집해 사지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이 모순적인 사상을 가리켜 ‘강제적 자원주의(coercive voluntarism)’라 명명했다. 이 기묘한 논리 탓에 징병을 기피한 이들은 신념에 찬 '저항자'가 아니라 단지 나태한 ‘슬래커(Slacker, 게으름뱅이)’ 혹은 낙오자'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사회적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더 무서운 점은 이 ‘강제적 자원주의’가 징병을 통해 최전선으로 향하는 남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군대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자원과 역량이 총동원되는 사상 초유의 총력전(total war)이었고, 후방에 남겨진 여성들에게도 그에 걸맞은 ‘전비(戰備)’ 태세가 요구되었다. 엉클 샘 포스터의 변형으로서 미국 여성을 전쟁의 수호 여신으로 묘사한 포스터들이 대량으로 뿌려졌고, 전 국민이 어떤 형태로든 전쟁 수행에 이바지하도록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그림 2).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윌슨은 묘한 딜레마에 빠진다. 이전까지 단호하게 거부해 왔던 오랜 요구, 즉 ‘여성 참정권 부여’를 마지못해 수용해야만 하는 막다른 길에 내몰린 것이다.

참전 결정 4개월 후, 백악관 앞에는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집결했다. 정부 입장에서 치명적이었던 사실은, 이들의 시위가 반전(反戰) 운동과 결합해 있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반전 운동은 전시 상황에서 곧 '스파이 활동'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위로 10명의 여성이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탄압만으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윌슨이 여성 투표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9조 수정안을 의회에 제안한 것은 그로부터 약 1년 뒤의 일이었다.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은 나의 헌법적 의무입니다.” 윌슨이 굳이 ‘나의 의무’라는 단어를 강조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참정권이라는 당근을 쥐여주지 않는 한 끈질기게 반전의 목소리를 낼 ‘장애물(여성 참정권론자들)’을 회유하고 배제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척했던 것이다.
전시 프로파간다의 탄생과 픽션의 경계
흔히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선동)’라는 말을 들으면 십중팔구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감언이설로 대중을 기만하고 정치적으로 엇나간 방향으로 선동하는 불온한 이야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사 연구의 관점에서는 정치인의 연설이나 언론 보도, 심지어 영화 같은 픽션조차도 현실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수용자의 사상과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모두 동일한 ‘이야기(Narrative)’의 연장선으로 간주한다. 요컨대 문화사 연구에서 '프로파간다'는 단순한 멸칭이나 욕설이 아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본질적으로 대중을 설득하려는 선전적 속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면, 세상의 모든 전쟁 영화는 필연적으로 프로파간다 영화가 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라도 그런 비판적 마음가짐을 품고 영화를 관람하곤 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본격적인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들자"는 목적하에 수많은 국책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영화가 노린 궁극적인 타깃은 다름 아닌 '중립국'의 우호적 여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교전국들이 애타게 구애하던 가장 거대한 중립국은 바로 미국이었다.
영국은 전쟁에 뛰어든 지 불과 한 달 만인 1914년 9월, ‘웰링턴 하우스(Wellington House)’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전쟁 선전국(War Propaganda Bureau)’을 비밀리에 신설했다. 이들이 제작한 기념비적인 첫 프로파간다 영화의 제목은 직설적으로 『영국의 전비(Britain Prepared)』였다.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미국 내에서 '전쟁 준비 운동'이 한창 달아오르던 1916년 무렵, 미국인들의 정서에 강렬하게 파고들었다. 초기에는 이런 류의 국책 영화들이 노골적인 선전물로 취급받아 묘한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 영화 시장에서 어엿한 흥행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영국이 프로파간다 영화를 앞다퉈 제작한 최대 목적은 물론 미국의 참전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917년 4월 미국이 정식으로 참전한 이후, 영국의 선전 타깃은 미국의 엘리트층에서 일반 대중으로 대폭 이동했다(이 과정에서 대중성을 띠고 탄생한 글로벌 스타 중 한 명이 바로 찰리 채플린이다). 대중의 마음을 직접 흔들겠다는 이 새로운 목적 아래, 1916년부터 영국 전쟁부 영화위원회(War Office Cinematograph Committee)를 이끌며 선전 영화를 총괄하던 맥스 에이트킨(Max Aitken)은 당대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미국인 영화감독 D.W. 그리피스(D.W. Griffith)에게 국책 영화 제작을 의뢰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그리피스의 무성 영화 『세계의 마음(Hearts of the World)』에는 본편에 앞서 다음과 같은 자막 프롤로그가 삽입되어 있다. “이 짧은 서론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재미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일개 미국인 감독이 실제 전장 한복판을 촬영할 수 있도록 특별 허가를 받았다는 이 지극히 이례적인 사실만큼은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텍스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나면, 머리 위로 실제 포탄이 빗발치는 최전선 참호 속으로 직접 카메라를 들고 뛰어드는 그리피스 본인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프롤로그의 대미는 감독이 당시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와 굳은 악수를 나누는 숏으로 장식된다.
불과 1분 남짓한 이 프롤로그 시퀀스가 이미 웅변하고 있는 바는 명확하다. 이 영화가 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프랑스 최전선 출입 허가 덕분에 탄생한 '국가 공인 산물'이라는 점이다. 본래 프로파간다 영화가 대중의 혐오를 사던 시대였음은 앞서 서술했지만, “선전물은 나쁜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는 점차 희석되었다. 오히려 정부의 공식 인가를 받은 영화야말로 전장의 생생한 현실을 시민들에게 전해주는 가장 정통한 정보원이라고 대접받기 시작했다. 대중의 인식을 이토록 영리하게 뒤바꿔 놓은 성공의 주역이 바로 그리피스를 기용했던 에이트킨이었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대중은 신문 같은 활자 매체 외에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뉴스릴(Newsreel, 뉴스 영화)’을 관람하며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텔레비전으로 전쟁이 생중계된 것은 베트남 전쟁부터다).
프로파간다 영화들은 실제 참호전 영상을 풍부하게 짜깁기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뉴스 영화를 통한 ‘객관적 보도’와 프로파간다 영화가 만들어낸 '픽션 이야기'를 명확하게 구분해 내기 어려웠다. 전쟁 프로파간다 영화야말로 ‘역사’와 ‘이야기’, 혹은 ‘현실’과 ‘픽션’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위태롭고 모호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르다.
이후 러닝타임이 긴 딱딱한 선전물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선전 기획자들은 자극적이고 맛있는 장면만 잘라낸 짧은 클립 영상으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현대의 '쇼츠(Shorts)' 영상을 연상시키는 상황에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국 정부는 여전히 대중의 마음을 진득하게 붙잡아 둘 서사적 깊이를 갖춘 굵직한 ‘이야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평범한 대중이 소박하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스토리를 직조해 내는 데 정평이 나 있던 그리피스가 낙점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 심리에 적극 호소하고자 했던 『세계의 마음』의 플롯은, 사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정석인 ‘전쟁 서사’와 ‘애절한 로맨스’를 단순하게 버무린 구조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 하필이면 이름도 ‘평화 거리’인 곳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두 미국인 가족이 있다. 두 집안의 젊은 남녀는 사랑에 빠져 약혼하지만, 전쟁이 발발해 이들의 단꿈을 짓밟고 결혼을 방해한다. 숱한 고난을 겪지만 결국 선(연합군)이 승리하여 사랑을 되찾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이다.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남자 주인공은 ‘중립국’ 미국의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프랑스군에 자원입대한다. 영화는 그의 참전 동기에 대해 “미국 시민으로서, 자신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땅은 마땅히 싸워서 지킬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에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짐짓 비장하게 해설한다. 그가 바로 윌슨 대통령이 부르짖던 ‘자발적 지원’이라는 숭고한 이상을 육화(肉化)한 캐릭터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징병 포스터 속 ‘엉클 샘’ 따위는 필요조차 없는 헌신적인 전사야말로, 영국과 미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주입하고 싶었던 메시지(프로파간다)의 화신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참전한 조국의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총후(후방)에서의 헌신이다. 극 중 남자가 전선에서 쓰러지자, 독일군의 침공으로 마을을 잃어가던 여주인공은 후방에 머무는 대신 혈혈단신으로 전선에 뛰어든다. 비장하게 결단을 내리는 그녀의 숏은, 그야말로 당시 미국 전역에 나붙었던 여성들의 전쟁 동원(리크루트) 포스터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듯하다(그림 3). 적군인 독일 병사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남편을 구출해 내는 그녀는 더 이상 현실 정치의 ‘슬래커(게으름뱅이)’도, 반전을 외치는 ‘스파이’도 아니다. 오직 맑고 용맹한 ‘마음’으로 ‘세계’에 자유와 평화를 되찾아주는 투쟁의 여신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마을에서 여자는 강제 노동에 종사하게 되고, 가냘픈 그녀는 독일군에게 무자비한 채찍질을 당하며 감금된다. 물론 화면에 묘사된 독일군의 이러한 잔학성은 온전히 미국 관객들의 피 끓는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해 의도된 설정이었으며, 영화 홍보에서도 독일군에 의한 여성 폭력이 가장 자극적으로 강조(피처)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역으로 등장하는 장교 ‘폰 슈트름’
의 설정이다. 그는 최전선에서 물러난 첩보부 소속으로, 주요 임무는 적국(연합군)의 선전 활동을 방해하고 억제하는 방첩 활동이었다. 즉, 이 영화 『세계의 마음』이라는 프로파간다 영화 자체의 적인 셈이다.
영화 종반부, 주인공들의 마을을 품은 프랑스는 궁지에 몰리고 두 사람은 하마터면 동반 자살을 할 뻔한 벼랑 끝에 선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구원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다름 아닌 미국 합중국의 전격적인 참전과 대규모 파병이다. 연합군은 승리하고, 해방된 거리에는 미·영·불 삼색 국기가 찬란하게 휘날리며, 영화는 그 벅찬 환희를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초상화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이 감동적인 서사를 마주한 우리는 스크린이 그려낸 다정한 허상에 가려, 정작 미국을 무자비한 전쟁 국가로 몰아넣은 실상, 즉 참전을 강요하던 저 무서운 '엉클 샘'의 뒷모습은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며 그저 삐딱하게 흘려들으면 그만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최종적으로 어떠한 입장을 정립하거나, 구체적인 정치적 태도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에 놓인다. 그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이자 책임이다. 다만, 당장 당신을 설득하려는 그 화려한 '이야기'가 결국 무자비한 폭력을 긍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호히 부정하고 있는가. 오직 그것만을 판단의 절대적인 잣대로 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원고를 써 내려간 나의 작고도 단단한 신념이다.
[필자 소개]
아베 고다(阿部幸大)
츠쿠바 대학 조교수이자 학술 교육 기업 'Ars Academica'의 대표로 재직 중인 일본의 문화사학자이다.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빙엄턴 대학교(뉴욕주립대 계열)에서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기억, 냉전기 아프리카·아시아의 대립, 미국의 근대성 등을 주로 연구하며 문학과 역사적 이데올로기를 연결하는 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대중문화와 문학 속 피해자성을 분석한 《내러티브의 피해학(ナラティヴの被害学)》(2025)과 대학가에서 주목받은 《완전히 새로운 아카데믹 라이팅의 교과서》(2024) 등이 있으며, 학술 연구와 대중적 글쓰기 양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옮긴이 소개]
강현서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3학년 재학 중이며,
일본의 사회,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문학과 영상 매체를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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