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을 계속 바라보는 것 -
글 | 모치즈키 히로키 (라이타)
옮긴이 | 조선모
출처 | 『 세카이(世界)』2026년 3월호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1월 3일 이른 아침,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한 호텔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SNS를 통해 불과 몇 시간 전부터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미군은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의 아내를 신속하게 구금한 뒤, 국제법을 철저히 무시한 채 자국으로 압송했다. 이들은 카라카스에서 강습상륙함 이오지마호에 태워져 쿠바 관타나모만에 있는 해군기지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다시 뉴욕의 공군기지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 경제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날로 커지고 엡스타인 문건 파문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뒷마당'을 직접 타격하는 국면 전환용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텔레비전에서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인근 센트랄역 주변으로 몰려나와 환호하며 집회를 벌이는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칠레를 대표하는 패스트푸드인 엠파나다 데 피노와 콤플레토를 서둘러 먹고 식당을 나와, 곧장 그 현장으로 향했다. 역 앞 광장에서는 베네수엘라 국기가 팔리고 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삼색기를 내건 상점과 노점이 눈에 띄었다. 신호 대기 중인 차 창문 밖으로 한 청년이 양손으로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카메라를 가져다 대자, 그는 자랑스러운 미소와 몸짓으로 화답했다. 마두로 정권 치하의 심각한 경제 위기와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에서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전례 없는 인구 유출이 발생했다. 그중 수십만 명이 현재 국경을 넘어 칠레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
오늘날 칠레 거주 외국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들이 바로 베네수엘라인이다. 베네수엘라를 떠나 이웃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험준한 다리엔 지협 정글을 뚫고 미국으로 북상한 이들의 비극적인 여정은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로 묵묵히 남하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차창 밖으로 국기를 흔들던 그 청년 역시, 안데스산맥과 아타카마 사막이라는 혹독한 길을 견디며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산티아고까지 흘러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칠레 퍼스트 (Chile First)
칠레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인들에게 트럼프 행정부가 미치는 파장은 무척 복잡하다. 한편으로 트럼프는 이들이 고향을 등지게 만든 장본인인 마두로 정권과 극단적으로 대립했으며, 마침내 무력을 동원해 그 독재자를 축출해 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여당인 좌파 연합 후보를 꺾고 당선된 극우 정치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흉내 내며 ‘칠레 퍼스트(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스트는 미등록 이민자의 강제 송환을 비롯해, 베네수엘라인들의 주요 유입 경로인 페루·볼리비아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국경의 방패’ 정책을 맹렬히 추진하고 있다. 결국 베네수엘라에서 북쪽으로 피난한 사람들은 미국 남부 국경에서 가로막히고, 남쪽으로 피난한 사람들은 칠레 북부 국경에서 가로막히는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나아가 이미 국경을 넘은 이들조차 트럼프 본인이나 그를 추종하는 극우 정치인들에 의해 언제든 짐을 싸서 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 당일, 가브리엘 보리치 현 칠레 대통령(좌파)은 X(옛 트위터) 성명을 통해 “미국의 군사 행동에 대한 우려와 규탄”을 표하며 “국제법의 기본 원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오는 3월 대통령 취임을 앞둔 카스트는 “니콜라스 마두로의 체포는 이 지역에 낭보”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더 나아가 그는 해당 게시물에서 굳이 “베네수엘라인들의 안전하고 신속한 귀환”을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귀향을 염원하는 난민들이 안심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카스트 발언의 기저에 깔린 저의를 파헤쳐 보면,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나 배외주의적 기조에 밀려 ‘원치 않는 강제 귀환’을 당할 위험성 역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카스트와 가장 자주 비교되는 인물이 바로, 트럼프와 돈독한 밀월 관계를 유지 중인 이웃 아르헨티나의 극우 통치자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다. 밀레이는 같은 날 “여기에는 중간 지대나 회색 지대란 없다. 선의 편에 설 것인가, 악의 편에 설 것인가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트럼프나 밀레이의 흑백논리적 시각에서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붕괴와 칠레의 카스트 당선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선의 세력'의 거대한 승리로 보일지도 모른다.
카스트의 대선 출마는 이번 2025년이 세 번째였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1차 투표에서 8%도 얻지 못해 결선 진출조차 실패했으나, 2022년에는 결선 투표에서 40% 이상을 득표하며 세력을 키웠고, 마침내 이번 선거에서는 6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 반대로 촉발되어 '사회적 폭발'이라 불렸던 2019년 대규모 시위를 이끌고, 극심한 빈부격차 해소를 부르짖으며 2022년 불과 35세의 나이로 카스트를 무너뜨렸던 좌파 보리치의 돌풍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180도 뒤집힌 퇴행이다.
오늘날 칠레 사회에는 1973년 9월 11일 피의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전복된 후 1990년까지 이어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통치에 대한 엇갈린 기억과 평가가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 정부의 암묵적 지지와 방조 아래 자행된 군부 독재로 수많은 납치, 고문, 살해 희생자가 발생한 사회 이면에는, 이러한 국가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 또한 분명 존재했다. 나아가 독재를 끝낼 투표권이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권위주의 통치의 연장을 갈망하는 우파 세력 역시 적지 않았다. 과연 카스트도 그중 한 명이었을까. 피노체트 정권의 8년 연장 여부를 묻는 1988년 칠레 국민투표 당시, 22세의 열혈 대학생이었던 카스트는 “Sí(찬성)” 진영의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투표는 “No(반대)” 진영의 역사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당시 유권자의 무려 40%가 "Sí"를 선택했다는 것 또한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민정 이양 이후 칠레 정치권에서는 피노체트 시대의 인권 유린과 권위주의적 폭압을 부정하는 것이 좌우 이념을 초월한 굳건한 범사회적 합의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카스트는 2017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만약 피노체트가 살아 있었다면 나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가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피노체트는 칠레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이다”라는 노골적인 문항에 카스트 지지자의 51%가 “적극 동의” 혹은 “동의”한다고 답했다. 더 끔찍한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민주주의 정부보다 권위주의 정부가 더 바람직할 수 있다”는 의견에 43%가 고개를 끄덕였으며, “이민자가 국가 정체성과 문화를 훼손한다”는 배외적 문항에는 무려 80% 가까운 이들이 동조했다는 점이다.
산과 바다와 사막
피비린내 나는 군부 독재 시절, 수많은 칠레인들이 조국을 등지고 망명길에 오르며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그중 일부는 베네수엘라를 택했는데, 이러한 이주의 궤적은 ‘현대 사회의 이주와 국경 넘기’를 기존과는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재고해 보게 한다.
1975년 베네수엘라로 피신한 세계적인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쿠데타 당일 모네다 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이기도 한 그녀는, 1981년 고국 칠레에 남아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한 통 썼다. 이 절절한 편지를 모티브로 탄생한 한 가문의 핏빛 대서사시가 바로 1982년 출간된 명작 『영혼의 집』이다. 오늘날의 베네수엘라(좌파 독재)와 과거의 칠레(우파 독재)는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정반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중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는 '권위주의 통치'라는 잔혹한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9년 영화 『꿈의 안데스(원제: La cordillera de los sueños)』로 칸 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인 '골든 아이(L'Œil d'or)'상을 거머쥔 칠레의 거장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 또한 타국 망명의 뼈아픈 역사를 지닌 인물이다. 구스만은 쿠데타 직후 체포되어 거대한 훌리오 마르티네스 프라다노스 국립 경기장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은 과거 그가 칠레와 이탈리아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즐겁게 관람했던 추억의 장소였다. 석방 후 살기 위해 쿠바, 스페인, 프랑스 등을 전전하며 그곳을 망명의 거점 삼아 그는 「칠레 전투」 3부작(1975~1979년) 등 잃어버린 조국의 비극을 다룬 묵직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독하게 이어왔다.
『꿈의 안데스』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옌데가 산화한 쿠데타의 심장부, 모네다 궁전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모네다역’ 플랫폼에 내걸린 거대한 안데스산맥 그림을 비추며 묵직하게 막을 올린다. 이 그림은 칠레의 망명 화가 기예르모 무뇨스 베라의 14점 연작 「오늘의 칠레(Chile Hoy)」 중 하나다. 해당 플랫폼에는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달의 계곡’부터 중부 ‘산티아고’의 불빛, 남부 파타고니아의 ‘그레이 빙하’에 이르기까지 칠레가 품은 다채로운 절경을 담아낸 크고 작은 작품들이 함께 걸려 있다.
그중 단연코 가장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두 작품은 바로 칠레의 험준한 동쪽 국경을 병풍처럼 두른 「안데스산맥」과 서쪽의 끝없는 해안을 씻어내는 「태평양」이다. 지하철역에 박제된 이 아득한 「태평양」 그림을 마주했을 때, 나는 문득 일본 미야기현 오나가와정에서 함께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한 중일(中日) 부부—일본인 남편과 중국인 아내—를 떠올렸다.
1956년생인 남편 후미오 씨는 2011년 3월 일본을 휩쓴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을 회고하며, 아주 오래전 자신을 덮쳤던 1960년의 ‘칠레 쓰나미’에 관한 기억의 파편을 꺼내놓았다. 당시 지구 반대편 칠레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초강진의 여파로 맹렬하게 발생한 쓰나미는, 꼬박 하루의 시간을 가로질러 고요하던 일본 태평양 연안의 어촌 마을까지 집어삼켰고 무려 100명이 넘는 억울한 사망자를 냈다.
“칠레 쓰나미가 덮쳤을 때, 나는 할아버지 등에 대롱대롱 업혀 있었어. 어린 마음에도 ‘아, 쓰나미라는 괴물이 이렇게 밀려오는구나’ 싶었지. 바닷물이 만 바깥으로 쑥 빠져나갔을 때만 해도 순박한 동네 사람들은 바닥에 나뒹구는 물고기 같은 걸 주워 담기 바빴어. 파도가 한 번 마을을 크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떠내려간 가재도구들이며 물고기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피난길에 할아버지 등에 업힌 채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걸 허겁지겁 줍고 있는 초현실적인 광경을 똑똑히 봤지.”
-『미쓰보시 복잡기행』 중,
「맞선 결혼으로 오나가와에. 하얼빈 출신의 두화 씨와 남편 후미오 씨가 되돌아보는 20년의 여정」에서-
조국의 장엄한 바다와 거친 산맥을 캔버스에 온기로 불어넣을 당시, 정작 화가 무뇨스 베라 본인의 몸은 칠레를 떠나 있었다. 그 역시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핍박을 피해 일찌감치 스페인으로 망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처절하게 조국을 등진 뒤에도, 폐허가 된 칠레 땅에 꿋꿋이 남아 피 흘리며 삶을 버텨낸 용기 있는 자들이 있었다.
구스만 감독은 영화 속에서, 쿠데타 발발 이후 칠레 밖으로 도망치지 않고 내부에서 군사정권의 짐승 같은 폭력과 그에 맞서는 시민들의 숭고한 항쟁의 순간들을 캠코더 하나에 의지해 담아온 은둔의 영상 기록가 '파블로 살라스'를 집중 조명한다. 살라스의 렌즈는 구스만이 갇혀 절망했던 바로 그 스타디움 철창 안으로, 어제까지 인사를 나누던 평범하고 무고한 시민들이 짐승처럼 끌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끔찍한 참상마저 숨죽여 포착해 내고 있었다.
살라스가 목숨을 걸고 남긴 방대하고 피비린내 나는 영상 기록 위로, 구스만 자신이 “젊은 시절 치기 어린 눈에는 도무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며 회한처럼 고백하는 안데스산맥의 웅장하고 무심한 실루엣이 스르륵 오버랩된다. 산맥은 언제나 묵묵히 그곳에 있었다. 성난 바다도, 메마른 사막도, 차가운 빙하도 억겁의 시간 동안 그곳에 있었다. 이념의 광기로 빚어낸 강제 수용소와 비명만이 가득한 비밀 고문 시설이 칠레 전역에 무려 천 곳 넘게 독버섯처럼 돋아났던 칠흑 같은 시대, 그 인간이 빚어낸 끔찍하고도 슬픈 풍경을 누군가가,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권력이 미쳐 날뛰던 독재 정권의 끔찍한 시대에도, 안데스산맥은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우리를 말없이 굽어보고 있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지만, 저 거대한 산들은 우리네 역사의 가장 오래되고 충직한 목격자다. 그들은 권력에 의해 철저히 은폐된 진실의 퍼즐을 빠짐없이 내려다보아 왔다. 만약 오만한 인간인 우리가 저 산의 거친 바위들이 뱉어내는 침묵의 언어를 온전히 해독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잃어버린 해답의 열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내레이션 중 일부-
향후 권력을 쥐고 흔들 극우 카스트 정권은, 2025년 지금 무뇨스 베라가 공들여 화폭에 담았던 '오늘의 칠레'를 자신들만의 폭력적인 색채로 거칠게 덧칠해 나갈 것이다. 메마른 북부 국경 지대에는 절박한 난민과 이민자들을 가로막기 위한 차갑고 견고한 '방패'들이 겹겹이 솟아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 지난하고 끔찍한 풍경의 변천을 수백만 년을 견뎌낸 안데스의 굽이치는 산과 아타카마의 타는 듯한 사막은 앞으로도 묵묵히 목격할 것이다. 유유자적한 라마와 비쿠냐, 몸을 웅크린 비스카차, 그리고 아직 두 눈이 멀지 않고 깨어 있는 인간들 또한 이 끝없는 폭력의 굴레를 두려움 없이 계속해서 주시할 것이다.
보는 것의 필요성
미군의 기습 작전으로 마두로가 전격 구금된 지 불과 나흘 뒤, 미국 본토 한복판인 미니애폴리스에서는 ICE(이민세관단속국) 수사관이 반인권적인 이민 단속 강화에 맨몸으로 항의하던 한 여성을 백주대낮에 공개적으로 사살하는 충격적이고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살해 현장은 거리를 지나던 수많은 목격자의 두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졌고, 스마트폰 다각도로 생생하게 촬영된 고발 영상들이 분노의 파도를 타고 SNS를 통해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이 끔찍한 영상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공권력을 빙자한 불필요할 정도의 과잉 폭력이자 명백하고도 부당한 국가적 살인 행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진실이 너무나도 명백했기에, 권력을 쥔 자들의 은폐와 왜곡 시도 또한 소름 끼칠 정도로 기민하고 뻔뻔하게 이루어졌다. J.D. 밴스 부통령은 사건 이튿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살인을 저지른 수사관의 '절대적 면책 특권'을 운운하며, 도리어 비극적인 책임을 방아쇠에 스러진 죽은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구역질 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살인마 수사관이 소속된 ICE의 최고 책임자인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한술 더 떠, 무참히 희생된 그 가엾은 여성을 가리켜 '국내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을 찍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진실은 언제나 두 눈을 뜨면 바로 코앞에 있다. 누구나 고개를 돌려 똑똑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무기력하게 발 디딘 이 기형적인 세계에서는, 거대한 권력을 쥔 누군가가 끊임없이 그 또렷한 진실의 거울 위에 제멋대로 두꺼운 덮개를 씌워 은폐하려 든다. 늘 교묘하게 본질을 흐리고 대중의 시야를 탁하게 가린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만하게 명령한다. ‘이제 더는 똑바로 보지 마라’, ‘스스로 생각하지 마라’, ‘그저 입 다물고 침묵하라’며 겁박하는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반(反)이민의 화신 트럼프 행정부가 마두로의 좌파 정권과 철천지앙숙이었던 것은 세계가 다 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르헨티나의 밀레이가 피를 토하며 선동하듯 무작정 '선의 편'이라는 환상 속에 줄을 서야 한다거나, 반대로 밀레이에 맞선다며 선악의 얄팍한 이분법을 그저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의적이고 그럴듯하게 그어 놓은 붉은 선, 그 양극단에 우뚝 서서 군림하는 권력의 괴물 같은 민낯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로를 완벽하게 빼닮아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주체가 좌파의 칼날이든 우파의 총구든, 그것이 뿜어내는 파괴적인 맹위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는 그 폭력의 맨얼굴을 두 눈을 부릅뜨고 직시하는 행위가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 권력자들이 뿜어내는 기만과 선동의 지독한 안개를 걷어내고, 묻혀가는 낱낱의 사실을 집요하게 기록하며, 결코 훼손되지 않을 진실의 그림을 끊임없이 용기 내어 그려 나가는 것. 지금 이 야만의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다.
[필자 소개]
모치즈키 히로키 (望月優大)
일본의 작가이자 편집자로, 주로 이민·난민·외국인 노동자·다문화 사회 문제를 다룬다. 그는 웹매거진 ‘일본 복잡 기행’의 편집장으로, 일본 사회 안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해 왔다. 대표 저서로는 ‘ふたつの日本 「移民国家」の建前と現実’ 이 있으며, 일본이 겉으로는 이민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는 모순을 다룬다.
[옮긴이 소개]
조선모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
일본 사회와 문화 및 문화간의 갈등 양상과 해소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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