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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디어 번역과 해제

원자력발전의 재가동과 ‘새로운 신화’

by xck2730 2026. 6. 23.

원자력발전의 재가동과 ‘새로운 신화’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카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 원자력발전소

 

저자 : 이케우치 사토루 (나고야대학 명예 교수, 종합연구대학원대학 명예교수)

옮긴이 : 정진현

출처 :世界 SEKAI 2026.03

 

 

 

들어가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드넓은 지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난을 강요당했다. 이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사고 후 수년 동안 사회 전반에서는 탈원전 분위기가 강해졌고, 정부도 줄곧 ‘가능한 한 원자력발전(이하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방침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2025년에 책정된 ‘제7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라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원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원자력 추진 노선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이에 호응하듯 작년 12월 니가타현 지사가 도쿄전력의 가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 원전[1] 재가동에 동의했고, 마찬가지로 홋카이도 지사 역시 홋카이도전력의 도마리(泊) 원전[2] 재가동에 동의하며 원전의 부활을 공식화했다. 또한, 올해 1월 초에는 주부전력의 하마오카(浜岡) 원전[3]이 기준 지진동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지진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하고 과소평가한 사실이 외부로 발각되어,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적합성 심사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원자력규제위원장이 “(데이터 조작을) 과학적으로 간파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듯, 하마오카 원전의 데이터 날조 사건은 의도적인 조작으로 심사위원회를 속이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으며 적합성 심사의 근본적인 신뢰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이른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4]’이라는 명목하에 원전 추진 정책이 실행되고 있으나, 이 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되려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대중의 엄격한 잣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본 글에서는 원전 활용을 대중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정부나 전력회사가 내세우는 두 가지 논리, 즉 원전의 ‘상대적 안전론’과 ‘새로운 신화’의 날조 및 유포 과정을 분석하고자 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참혹한 사고를 겪은 지금, 원전 안전성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했다. 이른바 ‘절대 안전 신화’는 붕괴했고, 이제 그 누구도 원전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인정하며 등장한 것이 바로 ‘상대적 안전론’이다. 이는 특정 기준점을 세운 뒤 그것과 비교하여 ‘그나마 낫다’고 주장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원전 사고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원전 사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 원인은 극복할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해도 회복할 수 있다”, “방사능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선전을 통해 이른바 ‘새로운 신화’를 구축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논리는 원전 사고의 참상을 직시하기보다는 그 피해를 은폐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원전 사고가 초래한 비참함과 그로 인한 피해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보상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원전 사고는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며 원전은 반드시 ‘절대 안전’을 추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이 개발한 기술은 본질적으로 ‘절대 안전’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을뿐더러, 지진과 화산의 나라인 일본에서는 이러한 천재지변이 언제 원전 사고의 방아쇠가 될지 알 수 없다. 즉, 원자력발전은 자기모순을 내포한 기술이다. 정부와 전력회사는 바로 이 현실을 ‘상대적 안전론’과 ‘새로운 신화’를 이용해 얼버무리려 하고 있다.

 

 

절대적 안전론의 파탄부터 원자력발전 추진까지

 

  기술은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인공물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제작된 인공물이 100% 완벽하게 작동할 리는 없다. 기술에는 반드시 결함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자연재해 등 환경 변화가 인공물에 미지의 오작동이나 파괴를 초래하거나(천재지변에 의한 폭주 또는 급정지), 설계와 실제 제작에 차이가 발생하거나(작업 공정의 오차), 관련 작업자가 실수로 잘못된 조작을 하는(휴먼 에러) 등의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이러한 이유로 기술의 산물인 인공물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하나 특별 주문 제작 방식으로 건설된 원자력발전소 역시 후쿠시마 사고가 보여주듯, 절대적 안전이란 한낱 신화에 불과했다. 당시 관리·감독 기관(원자력안전보안원)과 기술 운영 주체(도쿄전력)가 자신들의 기술을 과신한 나머지, 지진과 쓰나미에 대비한 외부 전력 보호 수단(이동식 발전기, 이동식 펌프·케이블 확보 및 배전반[5] 수밀화[6] 등)을 소홀히 하여 중대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고는 ‘천재(天災)’가 방아쇠를 당기고 ‘인재(人災)’가 피해를 키운 전형적인 사례다.

  이처럼 기술은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이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도입 찬반이 논의되어야 한다. 판단 과정에서는 안전성 파탄(기술의 실패)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피해 역시 검토 대상이 되어야 한다. 피해의 범주에는 생활의 파탄, 생명의 위협, 건강 손상, 고향 상실, 토지 포기 등이 포함된다. 이 광범위한 시공간적 영향, 심각성과 회복 가능성, 피해자 수, 직간접적인 사망 및 질병 발생 등 다양한 곤란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기술 실패로 인한 손실이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해당 기술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에는 ‘반(反)원전’ 여론이 거세졌고, 정부도 ‘원전 제로(0)’를 정책으로 내세웠다. 원전 사고가 가져온 피해의 절대적인 심각성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원전 추진파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어떠한 기술도 절대적인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대중이 깨닫자, 오히려 적반하장격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들은 “원전 사고는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으며, 사고 원인은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원전 재가동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2018년 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약 5년간 니가타현이 조직한 세 곳의 검증위원회를 총괄하는 ‘검증총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하나즈미 히데요(花角英世) 지사와 현 당국의 태도가 변해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취임 초 “탈원전 사회를 목표로 하겠다”고 공약하며 가시와자키카리와 원전 재가동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지사는, 결국 경제산업성, 재계, 도쿄전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재가동을 고려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후 후쿠시마 사고 검증 총괄을 맡았던 필자와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필자는 위원장직에서 일방적으로 해임당했다. 하나즈미 지사는 한정된 인원만을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나 공청회를 개최하는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수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설득했다"는 명분을 쌓은 뒤, “도민(현민)의 신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결국 다수의 원전 추진파가 장악한 현의회에서 재가동 결정이 내려졌다. 도쿄전력은 지사의 의향을 배후에서 지원하며, 지역 진흥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니가타현에 약 1,000억 엔 규모의 기금을 제안했다. 이는 일본 금권정치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상대적 안전론’의 비용(Cost)과 편익(Benefit) 비교

 

  이 과정에서 원용된 논리가 바로 ‘상대적 안전론’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그 사업으로 얻는 편익을 비교하는 ‘비용-편익 분석’은 원전의 위험성을 상대화하는 수법 중 하나다. 보통 최소한의 비용과 최대한의 편익을 산정한 뒤, 편익이 비용을 상회한다는 결론이 나오면 이를 사업 추진의 근거로 삼는다. 공공사업에 도입되는 기술 평가에도 이 분석이 적용되어 ‘○○엔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결론 아래 사업이 실행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당연히 편향(Bias)이 개입된다. 사업 추진을 전제로 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는 낭비가 전혀 없다고 가정해 지나치게 낮게 추산하고, 편익 측면에서는 과도한 이익을 가정해 최대로 부풀리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용-편익 분석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 손실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고립감, 상실감, 불안, 생활의 불편함과 부자유 등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어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 경제적 편익을 얻는 인원은 최대한 넉넉히 잡고 불확실한 이익까지 부풀려 포함하면 편익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이처럼 상대화 수법에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용’을 배제하고 ‘자의적으로 예측한 편익’을 추가한다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원전의 ‘상대적 안전론’은 위험성이 제기되는 원전을 계속 이용할지 여부를 선택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법이다. 전력회사는 원전 이용의 편익을 과장하는 한편, 원전 사고로 인한 비극에 대해서는 “사고는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가 나도 피폭량이 적어 문제 되지 않는다”, “방사능 오염은 뜬소문에 불과하다”, “오염 처리수는 바다에 방류해도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과 당장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상대화 수법은, 대중으로 하여금 원전 사고가 초래할 절대적인 참상을 망각하게 만든다.

  원전 문제에 적용되는 비용-편익 분석의 또 다른 결정적 결함은, 위험을 감수하고 오로지 비용만을 지불하는 ‘피해 지역(受苦圏)’ 주민과 원전의 이익만을 누리는 ‘수혜 지역(受益圏)’ 주민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원전이 위치한 지역의 소수 주민이고, 후자는 전력을 소비하는 도시의 다수 주민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니가타현의 가시와자키카리와 원전이다. 니가타에서 생산된 전기는 곧바로 수도권으로 송전된다. 니가타현은 원전 자체의 전력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며, 오직 수도권 주민들만 이익을 누린다. 원전에서 가혹한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피해는 니가타 도민들이 떠안지만, 수도권 주민들은 그저 끊긴 전기를 대체할 다른 전력을 요구할 뿐이다.

  본래 비용-편익 분석은 동일한 집단 내에서 이루어져야 유의미하다.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상대적 비교는 의미가 없음이 명백하다. 엄밀히 말해 피해 지역에는 방사성 폐기물의 엄중한 관리를 떠안아야 할 무수한 미래 세대까지 포함되어야 마땅하나,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상대적 안전론’의 수법과 문제점

 

  특정 비교 항목을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저울질하는 상대적 안전론의 문제점과 한계, 그 불충분함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첫 번째 문제점은 앞서 언급한 비용-편익 분석처럼, 모든 상황을 장단점, 우열, 득실, 플러스와 마이너스 등 좁은 프레임으로 한정 짓는다는 것이다. 본래 원전에는 절대적인 안전성이 요구되지만, 상대성의 논리는 이를 잊게 만든다. 절대적 안전론을 상대적 안전론으로 교묘히 대체함으로써, 사고의 절대적인 심각성을 가리고 표면적인 이익만으로 사안을 판단하게 만드는 위험이 존재한다. 이들이 이 논리를 어떻게 포장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상대적 안전성은 위험과 이익을 비교해 ‘이익이 위험을 상회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범위’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비용 대비 효과[7]를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세간의 거센 반발을 의식해 이를 대놓고 말하는 전력회사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항상 “원전을 재가동하면 1,000억 엔 정도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 계산이 깔려 있다.

  또한, 상대적 안전성을 ‘위험성을 상당 부분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범위’로 교묘하게 정의하기도 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위험을 ‘절대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자, ‘상당 부분’이라는 말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것이다. 이는 통제 불가능한 부분이 거의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이며, “실현 불가능한 완벽한 안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변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즉, 사고가 발생하면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상정 외의 사태)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면책 논리를 그 안에 교묘히 숨겨둔 것이다.

  재판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마무리 문구인  ‘위험성이 사회적 통념상 용인 가능한 수준 이하에 있다 ’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사회적 통념’을 기준으로 삼는 듯하지만, 애초에 그 통념이 무엇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통념’이라는 모호한 단어의 사용은 매우 교묘하다. 정량화가 가능한 ‘여론’이라는 단어는 피하면서, 마치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명확한 판단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통념이 그러하니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며 훌륭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 이른바 '사회적 통념'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규제위원회도 신(新)규제기준에 대해 “적합하다”고만 할 뿐, 결코 “안전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혹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기도 한다. 신규제기준을 상대적 기준점으로 삼아 심사 결과를 내놓되, “안전성 여부와는 무관하다”며 선을 긋는 것이다. 매우 정직한 태도 같지만, 이 심사 결과가 재가동 승인의 핵심 근거가 되고 법원조차 이를 공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규제위원회의 이러한 화법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결국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니 위험을 각오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상대적 안전론을 역설할 때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즐겨 쓰는 ‘이중부정’ 화법을 지적하고 싶다. 적합성 심사에서 도쿄전력 측에 “기술적 능력이 충분하다”고 확언하면 100%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므로, “기술적 능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식의 이중부정 화법을 쓴다. 이를 통해 묘한 의구심을 남기는 동시에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하면 절대적 안전이 없다는 것은 당연시되고, 나아가 절대적 위험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중을 호도하게 된다. 그 결과 원전 이면에 도사린 절대적인 재앙(심각성과 위험성)을 무시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상대적 안전론’의 진짜 목적이다. 위험성을 엄격히 따져야 할 규제 기준은 사실상 안전을 위한 ‘최소 조건’에 불과함에도, 이를 ‘충분 조건’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규제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심사가 상대적 안전론에 매몰되지 않도록 시민들이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원전 복귀의 ‘새로운 신화’

 

  원전이 멈추지 않는 일본에서는 국가 정책인 GX(녹색 전환) 노선이 가동되며 원전의 적극적 추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수단으로 ‘상대적 안전론’이 쓰일 뿐만 아니라, 원전의 치명적 단점을 잊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신화’ 만들기 작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 원전 사고의 역이용: 새로운 안전 신화

  항공기나 철도 사고가 발생하면 “이번 사고를 뼈저리게 반성하며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식의 다짐이 으레 등장한다. 대중은 ‘저렇게 큰 사고를 겪었으니 재발 방지 체계를 확실히 갖추겠지’라고 믿고 싶어 한다. 원전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은 ‘그토록 참혹한 사고가 있었으니 전력회사도, 규제위원회도 철저히 점검할 것이고, 두 번 다시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이것이 원전 사고의 충격을 역이용해 만들어낸 ‘새로운 안전 신화’다.

  이 신화를 굳히기 위해 정부와 업계는 피해 규모를 축소하고, 피난민의 귀환과 복구 작업의 진전을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2025년 6월, 정부는 귀환 정책의 방침을 ‘구역에서 개인으로’ 전환하기로 각의에서 결정했다. 이전까지 국가나 지자체가 관리해 온 ‘귀환 곤란 구역’ 일부의 방사선량을 20밀리시버트까지 제염한 뒤 “이제 안전하다”며 주민 출입을 허용했다. 그러면서 “개인이 방사선 측정기를 소지하고 피폭량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며, 향후 방사선 피폭에 따른 책임은 정부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새로운 안전 신화’ 아래 겉보기에만 화려한 부흥을 과시하려 한 것이다.

 

- 방사선 과학자의 역습: 방사능 안전 신화

  이 ‘새로운 안전 신화’의 이면에는 주류 방사선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방사능 안전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전역은 미량의 방사선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이는 방사성 물질 확산에 대한 지극히 건전하고 정상적인 거부 반응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대중이 방사선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지 않도록 ‘방사능 안전 신화’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방사선 피폭량이 100밀리시버트 이하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몸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궤변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방사선은 특정 수치 이하라면 안전하다는 하한선이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리 극미량이라도 피폭량에 비례해 위험이 발생한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 이들 과학자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 선전임이 드러났다.

  또한, 문부과학성을 비롯한 정부 기관과 방사선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사고 당시 주민들의 피폭량에 대해 철저히 “측정할 수 없다, 공표할 수 없다,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수많은 과학자가 방사성 물질 오염 조사를 소극적으로 진행하거나 회피했고, 측정을 하더라도 그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주민들의 정확한 피폭량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피해 지역의 수많은 아이에게서 갑상선암이 발병하고 있음에도, 이들이 과거 얼마나 많은 방사선에 노출되었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한편,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오랜 피난 생활과 불안으로 인한 ‘방사능 피로감’이 누적되었다. 게다가 방사능 문제를 언급하면 “지역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며 비난받는 분위기마저 형성되어, 스스로 방사선 문제에 침묵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러한 요인들이 맞물리며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미미하다’는 인식이 확산하였고, 이것이 ‘방사능 안전 신화’가 뿌리내리는 자양분이 되었다.

 

- 원전 유치 지자체의 환상: 지역 재생 신화

  현재 일본에서는 54기의 상업용 원전이 가동 또는 관리 중이다. 수많은 지역이 원전 유치 대상지가 되었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곳도 적지 않다. 반면, 지역 유지나 유력자들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원전이 들어선 경우도 허다하다.

  일반적으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에서는 젊은 층이 떠나고 지역 공동체의 존속조차 위태로워지자, 원전 유치에 따른 막대한 지원금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해왔다. 실제로 ‘전원삼법(電源三法)’에 따른 중앙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 전력회사의 협력금과 보조금, 넉넉한 고정자산세 수입이 쏟아지고, 원전 건설·가동·유지보수 과정에서 대규모 고용이 창출되며 일시적으로 지역 경제는 풍요로워진다. 이렇게 인구 소멸 위기를 넘긴 지역들은 원전이 지역을 살린다는 ‘지역 재생 신화’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경제적 혜택으로 지역이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신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원전 자금에 중독된 지역은 그 구조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게 되며, 결국 원전과 지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로 전락하고 만다.

  일각에서는 후쿠시마 역시 참사를 겪었음에도 막대한 복구 예산 덕분에 수많은 기업과 연구기관이 몰려들어 사고 이전보다 더 번영하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실상은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의 민낯일 뿐이다. 대재앙이 발생하면 복구라는 명목하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데, 중앙 권력과 유착된 대형 건설사(제네콘) 등 대자본이 이 틈을 타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구조다. 즉, 원전 사고라는 재난을 기회 삼아 중앙 자본이 후쿠시마의 토지와 자원을 잠식한 것에 불과하다. 현지 주민들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사고 이전의 일상을 되찾는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교: 원전 만능 신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15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절반가량이 정부의 원전 추진 방침을 지지하고 있다. 정부와 전력회사가 주로 전력을 소비하는 도시 주민들에게 “원전은 안전하다”, “가장 안정적인 전력 생산 수단이다”, “준(準)국산 에너지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다”, “신형 원전은 한층 안전하며 방사성 폐기물도 줄였다”며 원전의 장점만을 집요하게 주입한 결과다. 가히 ‘원전 만능 신화’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안전한가? 우라늄 연료를 전량 수입하면서 국산 에너지라 부를 수 있는가?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대신, 치명적인 방사성 폐기물을 대량으로 남기지 않는가? 안전하다던 미국의 신형 원전 개발 사업에서 철수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모든 주장이 허황된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방기했기에 정부의 얄팍한 유도에 쉽게 넘어가 버린 것이다. 반면,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날씨에 따라 불안정해 신뢰할 수 없다”, “자연환경을 파괴한다”,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등 비관적인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 있다. 원전의 장점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재생에너지의 단점만 부각하는 모순된 현실이다.

 

- 전력 수급 핍박의 위협: 전력 수요 증대 신화

  최근 인공지능(AI) 보급이 급물살을 타면서 반도체 공장과 대규모 데이터 센터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니 안정적인 전력 생산 수단인 원전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실제로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대만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거나 지역 곳곳에 데이터 센터 건립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전력 수요가 폭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는 과장된 ‘전력 수요 증대 신화’에 불과하다.

  일본의 실제 전력 소비량은 2010년을 기점으로 매년 감소하여 2024년 기준 약 15%나 줄어들었다. 전력회사는 이처럼 줄어드는 전력 수요를 만회하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전력 소비를 부추기며 위기감을 조장하는 이면이 있다. 데이터 센터 증설이 국가 전체의 전력 수요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끌어올릴지는 아직 불명확하며, ‘전력 수요 증대 신화’만이 홀로 유포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원전의 필요성을 억지로 정당화하기 위해 선전을 퍼뜨리는 것이다.

 

 

나가며

 

  현재 사회 전반이 원전 추진론으로 떠들썩하지만, 우리는 정부와 전력회사가 쏟아내는 선전의 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꿰뚫어 보고, ‘상대적 안전론’이라는 교묘한 수사와 ‘새로운 신화’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판단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만약 이대로 아무런 비판 없이 원전 추진론이 사회적 대세로 굳어진다면, 다시 한번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필자는 이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저자 소개]

이케우치 사토루(池内了)

우주물리학자인 이케우치 사토루(池内了)는 교토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했으며, 현재 나고야대학과 종합연구대학원대학의 명예교수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거품 우주론’을 제창한 저명한 학자인 그는 인문과학에도 조예가 깊어, 최근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박물학’을 주창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 내 극우 세력에 공공연히 반대를 천명해 온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세계 평화를 요구하는 7인 위원회’ 위원이자 ‘헌법 9조(평화헌법)를 지키는 과학자 모임’의 발기인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과학자와 군사연구』, 『과학자와 전쟁』, 『과학자는 왜 군사연구에 손을 대서는 안 되는가』, 『핵을 넘다』,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옮긴이 ]

정진현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3학년 재학중. 교직이수생으로 미래의 일본어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틀림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주석] ※별도의 표기가 없을 경우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추가한 주석임.

[1] 일본 니가타현 해안부의 가시와자키시와 가리와군에 걸쳐 있는 원자력발전소. 1985년에 첫 운전을 시작한 1호기를 포함해 총 7기의 원자로가 있다.

[2] 1989년 6월 22일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한 홋카이도 유일의 원자력발전소. 홋카이도 전력 수요의 40%를 담당했던 홋카이도전력 소속의 원전이다.

[3] 일본 시즈오카현 오마에자키시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주부전력이 관리하며 1976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총 5기의 원자로가 건설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가동 중단 또는 폐로 수순을 밟고 있다.

[4]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reen Transformation). 일본에서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사회 구조를 청정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산업 정책 기조.

[5] 발전기 등 하나 이상의 공급원에서 여러 작은 부하 회로로 전력을 분배·제어하는 장비.

[6] 장비나 설비를 수밀(水密) 구조로 개조하여, 수압으로 인한 침수나 누수 등을 원천적으로 예방하는 조치.

[7] 코스트 퍼포먼스(Cost Performance). 투입된 비용이나 노력 대비 얻어지는 성과의 비율, 즉 비용 대비 효과(가성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