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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디어 번역과 해제

방향을 잃은 ‘주식’의 미래: 쌀값 폭등의 그늘에서 진행되는 농가의 이탈

by djseo0102 2026. 6. 23.

[일본의 농가] 출처: https://allabout-japan.com/ko/article/11085/

- 쌀값 폭등의 그늘에서 진행되는 농가의 이탈 -

 

글: 야마다 마사루(山田 優)

옮긴이: 서동진

출처: 세카이(世界) 2026년 3월호

 

 

2024년 여름 전부터 이른바 레이와 쌀 파동이 시작되었다. 쌀 가격 상승이 국민의 식탁을 뒤흔드는 사이, 농가의 이탈은 조용히 가속화되고 있다. 효율적인 대규모 농가 육성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농업 정책은 자칫 식량 안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의 방침은 증산과 감산을 오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농가의 규모와 관계없이, 환경 보전 등 농업의 공익적 역할에 맞춘 장기적인 지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농업 현장에서 그 해답을 고민해 본다.

 

논 경작을 맡길 사람도 고령자

완만한 구릉지가 이어지는 땅콩 산지, 지바현 야치마타시와 산무시의 경계에는 가늘고 긴 골짜기 논(야쓰다)’이 자리 잡고 있다. 1983년 국가 사업을 통해 마을의 작은 논들을 정비하면서 트랙터 진입이 가능해진 곳이다. 산무시의 농가 A (75)는 아버지 세대부터 6,000제곱미터 규모의 논을 일궈왔지만, 5년 전 결국 쌀농사를 포기했다.

 

골짜기 지형 특성상 일조 시간이 짧아 수확량은 적지만, 평지에 비해 일교차가 커서 쌀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과거에는 지역 생활협동조합(생협)과 제휴해 농약을 줄였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여름이면 버스를 타고 찾아온 조합원들과 논에서 교류 행사를 열기도 했다. 또한 지역에서 선도적으로 직파(씨앗을 논에 직접 뿌리는 방식) 재배를 시험하는 등 그만의 농업 철학이 확고했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논농사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땅콩이나 당근 등 12,000제곱미터 규모의 밭농사에만 전념하고 있죠.” A 씨의 말이다. 다행히 같은 마을 농가에 임대를 준 덕분에 그의 논에서는 여전히 쌀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논을 빌려 간 농가 역시 A 씨와 비슷한 고령층이라, 언제까지 경작을 맡아줄지는 미지수다.

 

A 씨 집 옆에 있는 또 다른 골짜기 논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경작을 포기해 방치된 상태였다. A 씨의 논보다 좁고 볕도 잘 들지 않는 곳이다. 직접 현장을 걸어보니 작은 논과 농로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마을에 남은 사람은 대부분 저 같은 노인들뿐입니다. 오랫동안 쌀값이 바닥을 쳐서 현미 60kg 한 가마에 1만 엔도 못 받은 해가 허다했죠. 농기계를 갖추지 못한 농가들은 다른 집의 트랙터나 이앙기를 빌려 써레질과 모내기, 수확을 부탁해야 하는데, 이 작업 비용을 떼고 나면 쌀을 팔아도 적자만 남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이고 방치하면 미관상 좋지 않아 억지로 짓고는 있지만, 5년이나 10년 뒤에는 돈을 주며 부탁해도 농사지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미래의 주체를 그려내지 못하는 지역 농업 계획

대리 경작을 부탁할 사람이 없는 것은 비단 A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무시는 지난해 관내 지역별로 농가들을 모아 10년 뒤 농업의 청사진을 그리는 '지역 농업 계획'을 수립했다. A 씨가 거주하는 M지구에는 800헥타르가 넘는 농지가 있으며, 현재 이 중 31%'핵심 경영체'가 책임지고 있다. 핵심 경영체란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실천하거나 이를 목표로 하는 농업인을 뜻하는 행정 용어로, 고령화 시대에 미래 농업을 이끌어갈 주체로서 정부의 두터운 지원을 받는다.

 

이 시의 경우 10년 뒤 상당수 농가의 은퇴가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수립된 계획에는 은퇴자의 농지를 누가 이어받을지 명확히 명시하지 못했고, 핵심 경영체 비율 역시 현재 수준인 31%로 동결해 두었다.

 

시청 농정과 관계자는 지구 간담회에서 '고령자가 너무 많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토로가 쏟아졌다. M 지구뿐만 아니라 10년 뒤의 청사진을 그리지 못한 곳이 태반"이라고 밝혔다. 도쿄에서 차로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나리타 공항과도 인접해 개발이 한창인 이곳 산무시에서조차 농업의 미래는 짙은 안갯속이다.

 

일본 농민의 평균 연령은 68세다.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농촌에서 '누가 계속해서 땅을 일굴 것인가'는 산무시를 넘어 일본 농업 전체가 직면한 국가적 과제다.

 

농림수산성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농림업 센서스(20252월 기준)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국의 농업 경영체(농가)828,000호로, 5년 전 대비 23%나 급감했다. 1헥타르 미만의 소규모 농가로 범위를 좁히면 감소율은 26%까지 치솟는다.

 

물론 세대교체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곳도 있다. 트랙터 작업이 수월한 평야 지대에서는 은퇴하는 영세 농가의 땅을 대규모 핵심 경영체나 농업 법인이 흡수하고 있다. 대농이 소농을 통폐합하는 형태의 규모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형 농가가 소규모 농가의 빈자리를 100%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쌀의 절반은 5헥타르 미만의 소규모 농가에서 생산되며, 2헥타르 미만의 농가가 차지하는 비중도 30%에 달한다. 대형 농가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열악한 논을 외면한다면, 소 농의 퇴출은 곧바로 일본 전체의 논 면적과 쌀 생산량 감소로 직결된다.

 

이나가키 기미오(稲垣 公雄)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연구이사는 농가 수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자체 추산 결과 2050년에는 30년 전에 비해 8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농가가 흡수하지 못하는 잔여 농지는 결국 휴경지로 전락할 것이며, 이는 일본의 식량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쌀 파동의 진짜 원인: 빗나간 수급 예측

최근 불거진 쌀 가격 폭등 사태를 되짚어보자. 2024년 여름을 앞두고 쌀 소매가격이 들썩이며 언론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8, 난카이 해곡 지진 주의보가 발령되면서 일시적인 사재기가 발생했고, 이른바 레이와 쌀 파동이라는 말이 확산되었다. 농림수산성이 조사하는 마트 판매 가격(정미 5kg 기준)은 봄철 2,000엔대에서 멈출 줄 모르고 치솟았다. “9월에 햅쌀이 풀리면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던 정부의 낙관론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2025년을 지나 2026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쌀값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24년 쌀 파동을 촉발한 근본 원인은 붕괴된 수급 균형이다. 사태 초기부터 농업 전문가들은 정부 발표와 달리 현장의 쌀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경고음을 울렸지만, 농림수산성은 공급량은 충분하다. 유통 과정의 병목현상이 원인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한 채 "일부 유통업자들의 매점매석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2025221,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에토 다쿠 당시 농림수산상은 쌀값 상승 원인을 묻는 질의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생산 현장에서는 전년 대비 18만 톤이나 많은 쌀을 수확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무려 21만 톤의 쌀이 유통망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우선 이 유통 병목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당시 농림수산성이 얼마나 병목 원인론에 집착했는지 보여주는 문건이 있다. 언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그해 3월 말, 농림수산성은 부랴부랴 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허술하고 모순투성이였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관료들

해당 보고서는 조사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2024년산 쌀 생산량은 전년 대비 증가했으나, 당성이 매월 집계하는 유통업체 집하량과 민간 재고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재고가 산재해 원활한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어 이를 조사하고자 한다.”

 

전문가들이 제기했던 생산량이 정말 늘어난 것이 맞느냐”, “병목현상이 실재하느냐는 본질적인 의문은 덮어둔 채, 자신들이 설정한 병목론을 기정사실로 박아두고 조사를 설계한 것이다. 시작부터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짜맞춘 조사가 신뢰를 얻을 리 만무하다.

 

채소나 축산물과 달리 일본의 쌀 유통에는 여전히 정부 통제의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다. 법률상 정부는 정확한 쌀 수급 전망치를 산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을 조율해야 한다. 관료들이 추산한 데이터를 전문가 심의위원회에 올려 승인을 받는 구조지만, 이 시스템은 철저히 망가져 있었다.

 

과거 쌀 수급 심의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그 실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회의 직전에 관료들이 내미는 복잡한 수치와 설명 자료를 제대로 이해하는 위원은 거의 없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스모 심사위원회나 다를 바 없습니다. 결국 철저한 관료 주도일 수밖에 없죠.” 글로벌 곡물 무역 업계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그조차도 정부의 데이터를 검증하기는 벅찼다고 토로했다.

 

결국 농림수산성은 지난해 8월이 되어서야 공급이 부족했다. 유통 실태 파악이 미흡했다며 정책 실패를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는 농림계 유력 인사였던 에토 다쿠에서 쌀값 인하에 적극적이던 고이즈미 신지로로 장관이 교체되면서, 더 이상 억지스러운 병목론을 고집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잘못된 수급 예측을 바로잡을 견제 장치가 전무한 관료 주도의 경직된 쌀 정책 시스템, 바로 이것이 쌀 파동을 키운 핵심 원인이다.

 

조용히 지도에서 지워지는 작은 논들

정부나 지자체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쌀 생산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이것이 레이와 쌀 파동의 숨은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A 씨 집 근처의 방치된 논을 단서로, 행정 당국이 이 휴경지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추적해 보았다.

 

농림수산성은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를 활용해 전국의 농지 정보를 관리하는 온라인 농지 지도(eMAFF 농지 내비)’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지도상 약 4,000만 필지에 달하는 모든 논밭에는 고유 번호가 부여되며 면적, 토지 용도, 임대차 현황, 휴경지 여부 등의 데이터가 입력된다. 농지 거래나 지역 농업 계획 수립 시 핵심 자료로 활용되며, 각 지자체 농업위원회 사무국이 매년 현장 조사를 통해 정보를 갱신하도록 되어 있다.

 

A 씨 집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 논을 이 시스템에서 검색해 보았다. 도로를 끼고 서쪽으로 폭 20미터 남짓한 작은 논 16필지가 Y자 형태로 늘어서 있었다. 시스템상 총면적은 약 6,900제곱미터, 논 한 필지당 평균 431제곱미터에 불과한 영세한 규모였다.

 

지난해 말 A 씨와 함께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 도로변의 논 4곳만 최근까지 벼를 벤 흔적이 남아있을 뿐, 나머지 안쪽 논들은 덤불이 우거져 발을 들이기조차 힘들었다. 최소 수년 이상 방치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스템상 이 12곳의 버려진 논은 모두 유휴 농지가 아님(정상 경작 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쌀을 흉작하고 있는 셈이다. 행정 당국이 현장의 붕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지역 농업위원회 측은 규정상 매년 모든 농지의 유휴화 여부를 점검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자투리땅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물론 이 시스템의 데이터가 정부의 공식 쌀 수확량 통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식 통계는 전국 약 8,000곳의 표본 논을 직접 수확해 생산량을 추산하는 방식을 쓴다. 그러나 이 골짜기 논의 사례는 영세 농지의 조용한 소멸을 행정 시스템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도에서 사라진 이 5,160제곱미터의 논에서 정상적으로 쌀이 생산되었다면 약 2.4톤을 수확할 수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을 60kg으로 잡으면 4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다. 연간 600만 톤에 달하는 국가 전체 쌀 소비량에 비하면 통계적 오차 범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규모 농가들이 무서운 속도로 농촌을 떠나고 있으며, 자가 소비나 도시에 나간 자녀들에게 보내기 위해 근근이 유지해 오던 전국의 작은 논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농가 한 곳의 생산량은 미미할지라도 이것이 전국 단위로 누적된다면 국가 수급에 균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20년간 이어진 쌀값 폭락이 부른 비극

소규모 농가들이 앞다퉈 농사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기간 이어진 쌀값 폭락이다.

 

흉작으로 가격이 반짝 상승했던 2003년을 정점으로 쌀값은 무려 20년 가까이 끝없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쌀 파동 직전까지 농가가 쥐는 돈은 현미 60kg 한 가마당 고작 1만 엔 남짓에 불과했다. 반면 농림수산성 통계에 따른 평균 쌀 생산비는 약 15,000엔이다. 대형 농기계를 굴리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대농들은 단가가 낮아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영세 농가일수록 생산비 단가가 치솟아 벼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나는 구조다. 생산비에 포함된 인건비를 고려하면, 영세 농가들은 사실상 무급 노동이나 극단적인 헐값 노동을 강요받아 온 셈이다.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20253, 트랙터를 앞세우고 도쿄 도심으로 향했다. 이른바 '레이와 농민 봉기'. 평소 농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카사카와 요요기 거리를 농민과 소비자 단체 대표들이 함께 행진했다.

 

시위를 주도한 야마가타현의 농민 스가노 요시히데 씨(76)는 단상에 올라 피를 토하듯 호소했다.

시급 10엔 수준의 수익으로는 농민도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아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농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농촌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농업인의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연대해 일어섰습니다.”

 

반년 만에 두 번이나 뒤집힌 쌀 정책

202410월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은 비축미 방출 등 가격 인하에 안간힘을 썼지만 약발은 먹히지 않았고,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의 원성은 극에 달했다. 결국 이시바 정부는 2025년 여름, 사실상의 '생산 조정(감반) 정책'을 폐기하고 쌀 증산으로 농정의 방향타를 꺾었다. 생산량을 대폭 늘려 내수 가격을 안정시키고, 남는 쌀은 해외로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무려 반세기 만에 이루어지는 쌀 정책의 대전환이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인 202510, 바통을 이어받은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이 정책을 또다시 뒤집었다. 신임 스즈키 노리카즈 농림수산상은 갑작스러운 증산 정책으로 현장의 혼란이 극심하다며 전 정권의 노선을 전면 백지화했다. 불과 몇 달 만에 과거의 "수요에 맞춘 생산 통제" 기조로 회귀한 것이다.

 

벼농사는 1년에 단 한 번 짓는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곧바로 이듬해 파종할 볍씨와 비료, 농약을 준비해야 하는 농사 주기를 철저히 무시한 채 더 심어라했다가 곧바로 다시 줄여라며 오락가락하는 탁상행정에 농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국가 쌀 공급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던 소규모 농가들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은 국가적 재난이다. 그러나 정부의 농업 정책은 정반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 모든 예산과 지원을 소수 대규모 경영체에 몰아주어 가격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현 농정의 변함없는 기조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10월 시정연설에서 향후 5년간 농업 구조 전환 집중 대책 기간을 설정해 막대한 특별 예산을 투입하겠다. 최첨단 식물 공장, 위성 데이터와 AI 분석, 로봇 센서 기술을 총동원해 수출을 늘리고 수익성 높은 돈 버는 농림수산업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첨단 스마트 농업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일본 농업을 살릴 유일한 처방전이라는 선언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미래 농촌에 필요한 것은 AI 트랙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극소수의 기업형 농가뿐이다. 재래식 농법에 의존하는 소규모 늙은 농민들에게는 조속히 논두렁을 떠나라고 종용하는 선언으로 들리는 것은 과연 필자뿐일까.

 

사회문제 해결을 농정의 최우선으로 삼은 유럽

농업 역시 생산성을 끌어올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언뜻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가 세계 농업의 절대적인 진리인 것은 아니다. 효율성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뼈저린 반성 위에서, 유럽은 이미 농업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7년 프랑스 남부 오슈 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무원 은퇴 후 귀농해 유기농업을 시작한 피에르 푸조 씨(57)가 멀쩡한 밭 한가운데에 나무를 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생산 효율성만 놓고 보면 농경지는 구획이 넓을수록 유리하다. 대형 트랙터 보급과 함께 프랑스 역시 밭의 경계를 나누던 생울타리와 나무들을 싹 밀어버렸고, 광활해진 밭을 기계가 누비며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던 터였다.

 

그런데 푸조 씨의 행보는 이러한 현대 농업의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경사가 완만한 21헥타르 밭 곳곳에 수십 미터 간격으로 등고선을 따라 벚나무와 아몬드 묘목이 빼곡히 심겨 있었다. 묘목 구입 비용은 유럽연합(EU)의 환경 보조금으로 충당했다.

푸조 씨는 이웃 밭과의 경계선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조용히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놀랍게도 그의 밭 지면이 이웃 밭보다 30센티미터나 더 높았다.

 

농사를 지은 지 딱 4년 됐는데, 토양 유실을 막아주는 효과가 벌써 이렇게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는 밭을 깊게 갈아엎지 않았고, 작물을 수거한 빈 밭에는 피복 식물을 심어 표토가 쓸려나가는 것을 막았다. “심어둔 나무들이 훌쩍 자라 방풍림 역할을 해주고 나면, 이 밭은 다양한 곤충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가 될 것이라며 그는 밝은 미래를 그렸다.

얼마 뒤 그와 전화 통화를 해보니, 자라난 나무들이 밭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지역 생태계의 일부로 완벽히 동화되었다고 했다. 훌륭한 산림농업(아그로포레스트리)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푸조 씨 농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25년 말 주일 프랑스대사관 농무관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토양 보존과 생물 다양성 증진은 물론, 온실가스인 탄소를 토양에 가두는 효과까지 탁월한 아그로포레스트리는 현재 프랑스 농정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전역의 산림농업 면적은 무려 15,000헥타르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보조금의 투명한 공개와 중소농 중심의 지원

유럽의 농업 정책에서 경쟁력 강화생산 효율화는 명백히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 빈자리는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등 지구적·지역적 과제 해결에 동참하는 농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들로 채워지고 있다. 환경 문제에 민감한 시민 의식과, 혈세가 허투루 쓰이는 것을 엄격히 감시하는 납세자들의 깐깐한 눈초리가 이러한 변화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유럽 28개국 대부분은 농가가 수령하는 보조금 내역을 온라인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농업 보조금 검색 사이트(farmsubsidy.org)'에 실명만 검색하면 해당 농가의 주소와 보조금 액수, 종류가 낱낱이 뜬다. 2005년 유럽 탐사 보도 기자들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EU의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누구나 검색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한 결과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영국 기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막대한 농업 보조금을 싹쓸이하는 주범이 일부 귀족, 거대 다국적 식품 기업, 투기 목적의 부재지주, 심지어 유력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자 유럽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고 회고했다. 납세자들의 분노가 들끓자 결국 보조금 수령액에 상한선이 신설되었다. 아울러 농지의 규모와 상관없이 지역의 생물 다양성 보전이나 기후 위기 대응에 기여하는 환경 친화적 영농을 보조금 지급의 필수 조건으로 내걸게 되었다. 푸조 씨가 실천한 산림농업 지원금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규모가 영세한 농가일수록 직불금 산정에서 가산점을 주는 우대 정책도 유럽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단일화된 기업농이 아닌,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농가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농촌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농정의 중요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유럽위원회는 20252, 향후 2040년까지의 농식품 정책 가이드라인을 담은 '농업과 식량의 비전'을 발표했다. 여기서 채택된 최우선 과제 1순위는 '농민들의 공정한 생활 수준 보장과 매력적인 산업 구조 창출'이었다. 불공정한 농산물 거래 관행을 뿌리 뽑아 농가들이 안정적으로 생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농민의 이탈을 막고 지속 가능한 농촌 사회를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은 것이다. 반면 일본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쟁력 강화와 회복력 증진'2순위로 밀려났다.

 

반면 일본의 농업 보조금은 여전히 대규모 농가에 집중적으로 쏠려 있다. 개별 농가의 보조금 수급 내역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져 있지만, 농림수산성의 조사 데이터만 보더라도 벼농사의 경우 규모가 클수록 전체 수입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다. 1헥타르 미만 소규모 농가의 보조금 의존도는 10%에 불과하지만, 20헥타르 이상 대농은 수입의 40%를 보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일본 역시 이제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소수 정예의 대농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다수의 소규모 농가 퇴출을 종용하는 듯한 현행 정책은 위험하다. 보조금 제도를 전면 개편해 모든 농가가 환경과 지역사회를 지키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일본의 납세자들이 진정으로 농업에 바라는 것이 마트 진열대에 놓인 '값싼 쌀'뿐일까? 우리가 매일 먹는 쌀을 키워내는 논은 무려 6,000여 종에 달하는 생물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생태계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농민이 떠나 잡초와 잡목이 무성해진 버려진 논에서는 더 이상 고추잠자리가 날아오르지 않는다.

 

투박한 손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작은 논을 일구는 영세 농민들은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대체 불가능한 기둥이다. 대농과 소농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공존하고, 생태적·문화적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농촌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극심한 혼란을 빚은 레이와 쌀 파동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뼈아프고도 귀중한 교훈일 것이다.

 

 

 

저자 | 야마다 마사루

야마다 마사루는 195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농공대 연합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농업 저널리스트이다. 세계 농업과 농업정책, 농산물 통상교섭, 식량 문제와 쌀 정책, 농업 기술과 AI, 지속가능한 농업 등 폭넓은 분야를 다루며, 농업을 단순한 생산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세와 기술 변화, 식량안보가 교차하는 사회적 과제로 분석해온 전문가이다. 특히 아시아의 쌀 문제와 농업 혁신, 인재 육성, 농업 문제의 구조적 기반을 꾸준히 탐구해왔으며, 주요 저서로는 처음 시작하는 농업 컴퓨터, 긴박한 아시아의 쌀 잇따르는 수출 규제, 농업혁신과 인재육성 시스템, 농업문제의 기층이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옮긴이 | 서동진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3학년 재학 중이다. 한국과 일본의 지방 농업 관련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