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
리 코토미(李琴峰)의 「私の生存を『活動』にしているのは誰か」는 소수자의 일상적 발화가 왜 ‘활동’이나 ‘정치색’으로 번역되는지를 묻는다(李琴峰, 2026, p. 211). 핵심은 소수자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주체라는 데 있지 않다. 결혼, 국적, 법적 성별, 체류자격, 국가 승인 같은 제도 조건을 몰라도 살아갈 수 있는 위치와, 그 조건을 알아야만 일상을 방어할 수 있는 위치 사이의 비대칭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제목의 “누가”라는 물음은 소수자에게 정치성을 돌리는 시선을 멈추게 하고, 그 정치성을 생산하는 독자, 출판, 언론, 법, 행정의 해석 장치를 분석 대상으로 옮긴다.
일본 사례에서는 동성혼 부재와 파트너십 제도의 한계, 성별정정 제도, 외국인 체류, 대만 문제를 검토한다. 한국 사례에서는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판결,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쟁,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절차, 이주민 정책, 성소수자·이주민 재현,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마케팅 논란을 비교한다. 비교의 초점은 두 사회가 소수자를 전면적으로 배제하기만 한다는 단순 명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쟁점은 부분적 인정이 불평등의 지속을 가릴 때, 미디어가 어떤 언어로 그 착시를 강화하거나 해체하는가이다. 리 코토미의 문제의식은 설득력이 크지만, 활동가라는 호명이 언제나 억압적인 것은 아니며 제도 지식의 부담도 단일한 다수자/소수자 구도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분석의 결론은 정치화 자체의 거부가 아니라, 당사자의 생활 언어와 역사적 기억을 논란과 낙인의 프레임으로 자동 번역하는 미디어 감각의 비판으로 모아진다.
핵심어: 리 코토미, 무지할 수 있는 특권, 활동가 프레이밍, 성소수자, 동성혼, 성별정정, 역사적 무감각, 동아시아 미디어론
서론: ‘활동’으로 번역되는 생존
질문의 방향 전환
리 코토미의 글은 제목에서 논쟁의 방향을 바꾼다. 통상적 질문은 “왜 소수자는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가”에 가깝다. 리 코토미는 반대로 “누가” 생존을 활동으로 만드는지를 묻는다(李琴峰, 2026, p. 211). 여기서 분석해야 할 말은 ‘생존’보다 ‘누가’이다. 쟁점은 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정치적으로 과장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장치가 그 삶을 정치적 활동으로 읽어 내는지에 있다.
출발점은 작은 사건처럼 보인다. 해외판 프로필에 작가·번역가 외에 활동가라는 직함이 추가되었다(李琴峰, 2026, p. 211). 리 코토미는 사회운동을 폄하하지 않고 실제 활동가들의 노동을 존중한다고 밝힌다. 문제는 LGBTQ+를 다루는 순간 문필 활동이 자동으로 활동가의 행위로 분류되는 데 있다. “활동”이라는 따옴표는 이 단어가 자기명명이 아니라 외부가 붙인 분류표임을 드러낸다.
이 불균형은 프레이밍의 문제다. 프레이밍은 현실의 일부를 선택하고 강조하여 원인, 책임, 해결책을 특정 방향으로 조직하는 과정이다(Entman, 1993). 이성애자 작가의 결혼과 가족 이야기는 사적 경험이나 생활 서사로 읽히기 쉽다. 성소수자 작가가 결혼 불가능, 법적 성별, 가족 형성의 어려움을 말하면 같은 생활 언어가 곧 ‘정치적 주장’으로 바뀐다. 리 코토미가 말한 “색깔”은 발화 내용보다 발화자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 변환 과정을 가리킨다(李琴峰, 2026, pp. 212–213).
논지와 범위
소수자의 삶이 정치화되는 까닭은 소수자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서가 아니다. 다수자가 자신의 일상을 떠받치는 제도적 조건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리 코토미가 말하는 무지할 수 있는 특권은 혼인, 체류, 국적, 성별, 가족, 국제정치의 세부를 몰라도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적 위치를 뜻한다(李琴峰, 2026, pp. 213–214).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 그 세부는 거주, 노동, 의료, 가족관계, 신분증, 언어와 직결된다.
분석은 리 코토미의 텍스트를 중심에 두고 한국과 일본의 제도 및 미디어 사례를 비교한다. 일본의 동성혼 소송과 파트너십 제도, 성별정정, 외국인 정책, 대만 문제는 제도 지식이 어떻게 생존 조건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건강보험 판결, 차별금지법 논쟁, 성별정정 절차, 이주민 정책, 보도 프레임은 같은 비대칭이 다른 제도적 형태로 반복됨을 보여준다. 비교의 목적은 어느 사회가 더 진보적인가를 가르는 데 있지 않다. 부분적 인정이 어떻게 충분한 평등처럼 보이고, 미디어가 그 인상을 어떻게 유통하는지 밝히는 데 있다.
리 코토미 글의 핵심 논지
활동가 프레임과 자기명명의 권리
리 코토미가 거부하는 것은 활동가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특정 정체성이나 주제를 말하는 순간 그 단어가 자동 부여되는 방식이다. 작가가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할 때 그 문장은 개인적 경험의 서술이면서 동시에 제도의 효과에 대한 증언일 수 있다. 그런데 사회가 이를 곧바로 운동의 언어로 읽으면, 발화자는 사적 경험을 말할 권리보다 집단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부담을 떠안는다.
재현은 현실을 단순히 비추지 않는다. 어떤 정체성이 공적으로 이해되는 방식을 생산한다(Hall, 1997). 출판 프로필, 위키백과 설명, 방송 자막, 기사 제목, 학교 발표자료, 댓글은 모두 사람을 특정 의미망 안에 배치한다. “활동가”라는 직함도 그중 하나다. 반복된 명명은 편의적 분류를 넘어 사회적 사실처럼 굳어진다.
리 코토미의 다른 공개 발화는 이 문제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 그는 공식 웹사이트에서 레즈비언이며 동성혼 법제화를 지지하고 프라이드에도 참여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李琴峰, 2024). 동시에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자신을 규정하는 핵심 이름이라기보다 상태나 속성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공적 실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속성으로 전 존재가 환원되는 방식을 거부하는 셈이다.
따라서 쟁점은 성소수자 권리를 말하는 작가를 넓은 의미의 공적 지식인으로 볼 수 있느냐가 아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특정 정체성을 이유로, 문학적·비평적 발화가 자동으로 운동의 표지 아래 놓이는 비대칭이 문제다. 이성애자의 결혼 에세이는 가족 서사로 남고, 동성애자의 결혼 불가능에 관한 에세이는 정치적 주장으로 분류될 때, 활동가라는 호명은 중립적 묘사가 아니라 프레임이 된다.
무지를 허락받는 위치
리 코토미는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출입국관리, 체류자격, 외국인 정책, 동성혼 소송, 파트너십 제도, 헌법 제14조와 제24조, 성동일성장애 특례법, 대만의 국제적 지위까지 익혀야 했다고 말한다(李琴峰, 2026, pp. 213–214). 이 목록은 지적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라 방어적 지식의 목록이다. 모르면 불이익을 받거나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잃기 때문이다.
일본 국적자, 시스젠더, 이성애자 다수자는 같은 지식을 몰라도 크게 곤란하지 않을 수 있다. 태어나면 국적의 경로가 있고, 법적 성별을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성인이 되면 혼인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특권은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제도를 몰라도 제도의 보호를 받는 위치다. 비판의 초점은 무지 자체보다 그 무지가 공적 발언으로 행사될 때 생기는 효과에 있다. “합헌 판결이면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은 악의 없는 오해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법적 패배를 축하받는 폭력으로 경험된다(李琴峰, 2026, p. 215).
이 점에서 김지혜(2019)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논의와 리 코토미의 문제의식은 만난다. 차별은 노골적 혐오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몰랐다”, “의도는 없었다”, “그 정도는 문제 아니지 않나”라는 말도 제도적 비대칭 속에서는 상처를 남긴다. 다만 모든 무지를 같은 강도로 비난할 수는 없다. 법과 제도는 복잡하며 누구나 모든 세부를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모를 수 있는 사람과 몰라서는 안 되는 사람이 어떻게 나뉘는지, 그리고 그 나뉨이 어떤 발언권의 차이를 낳는지다.
생존을 조직하는 제도
리 코토미에게 정치는 정당, 선거, 시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적 결혼 가능성, 병원에서 보호자로 인정받을 가능성, 외국인 배우자로 체류자격을 받을 가능성, 신분증의 성별이 삶을 설명할 가능성, 출신지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릴 가능성도 정치의 영역이다. 생존은 은유가 아니라 제도적 조건이다.
동성 파트너의 상속권, 의료 결정권, 체류자격, 법적 성별, 국적 표기는 모두 생활의 안정성을 좌우한다. 소수자가 제도를 말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과잉이 아니라 이미 제도에 의해 조직된 삶을 설명하는 최소한의 언어다. 여기서 리 코토미의 글은 정체성 정치에 대한 방어문이 아니라, 정체성이 정치로 번역되는 조건에 대한 분석문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소수자의 발화를 곧바로 생존 발화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경험을 정치적 언어로 말하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사적 경험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핵심은 비정치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의 맥락을 당사자가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는 데 있다.
세 사례: 혼인, 성별, 대만
리 코토미의 글은 세 사례로 논지를 구체화한다. 첫째, 동성혼 소송과 시부야구 파트너십 제도를 둘러싼 오해다. 둘째, 법적 성별과 신체를 둘러싼 제도적 폭력이다. 셋째, 대만 출신자로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말이 단순한 국제정치 의견이 아니라 출신지와 정체성을 왜곡하는 발언이 되는 문제다(李琴峰, 2026, pp. 214–217). 세 사례는 영역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다수자는 몰라도 되는 제도를 소수자는 생활의 조건으로 배워야 한다.
동성혼 사례는 부분적 인정이 어떻게 착시를 낳는지 보여준다. 파트너십 증명서는 분명 진전이지만 혼인과 동일하지 않다. “최초의 파트너십”이라는 보도는 변화를 알리지만, “혼인에 상당”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면 법적 차이는 흐려진다(李琴峰, 2026, pp. 214–215). 권리 요구는 이미 해결된 요구처럼 보이고, 다수자는 더 배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성별정정 사례는 제도가 신체를 어떻게 조건화하는지 보여준다. 법이 특정 수술이나 생식능력 상실을 요구할 때 개인은 법적 승인과 신체의 온전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낙인은 부정적 감정만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신을 계속 설명하게 만드는 분류 체계다(Goffman, 1963). 법적 성별을 둘러싼 절차는 바로 그 분류 체계의 제도적 형태다.
대만 사례는 논의를 성소수자 권리에서 국제정치로 확장한다. 일본에서 외국 국적자로 살고, 대만 출신자로 일본어 문학장을 통과하는 저자에게 대만의 국제적 지위는 외교 뉴스가 아니다. 이름, 국적, 언어, 이동, 안전과 연결된 생활 조건이다. 국제질서의 언어도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규정하는 미디어 프레임이 된다.
일본 사례: 제도와 담론의 중첩
동성혼 부재와 파트너십 제도의 착시
일본은 2026년 6월 현재 전국 단위 동성혼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2026년 3월 최고재판소 대법정 회부 이후에도 혼인 평등은 시행되지 않았다(Meiji.net, 2026; The Japan Times, 2026). 2015년 시부야구와 세타가야구의 파트너십 제도는 상징적 전환점이었지만(The Japan Times, 2015), 지방정부 증명은 법률혼과 다르다. 상속, 세금, 사회보험, 재류자격, 친권 등 핵심 영역에서 효력은 제한된다.
2025년 11월 기준 파트너십 제도는 541개 이상으로 확산되었고 관할 인구 기준으로도 넓게 보급되었다(Tokyo Review, 2025). 그럼에도 확산은 완결이 아니다. 어느 지자체에서 어떤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지, 그것이 병원·주거·직장·체류에서 어느 정도 효력을 갖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다수자는 혼인신고 하나로 처리하는 절차를 소수자는 지역별·기관별로 해석해야 한다.
동성혼 소송 역시 공론장을 확대했지만, 법적 결론의 지연은 당사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남긴다. 2025년 11월 28일 도쿄 고등법원 2차 판결을 제외하고 여러 고등법원 판결이 현행 법제의 헌법상 문제를 인정했다(Associated Press, 2025; Amnesty International, 2025). 이런 분산된 판단은 혼인 평등이 아직 쟁점화 단계에 머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회 담론에서는 찬성 측이 법원 판단과 국제 흐름을, 반대 측이 전통적 가족 구조와 일본적 맥락을 정당화 자원으로 삼는다(Yoshimoto, 2025). 결혼을 둘러싼 기존 가족 규범도 이미 정치적 담론으로 방어되고 있지만, 다수자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비정치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성별정정 제도와 신체 자기결정권
일본의 성동일성장애 특례법은 법적 성별 변경 절차를 법제화했지만, 오랫동안 생식능력 상실 요건 등 강한 신체 조건을 요구했다. 2023년 10월 최고재판소는 생식능력 상실 요건을 헌법 제13조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Supreme Court of Japan, 2023). 이는 국가가 법적 성별 승인을 위해 신체 침습을 요구해 온 구조를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결정이었다.
리 코토미의 문제의식과 연결하면, 성별정정 절차는 개인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어떤 신체를 인정 가능한 시민으로 분류하는가의 문제다. 법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권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법률의 조건이 당사자에게 과도한 증명 책임과 신체적 부담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별정정 제도는 소수자에게 강제되는 지식이 문서와 절차를 넘어 몸의 수준까지 내려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국인 정책과 국적의 정치
리 코토미는 일본에서 외국 국적자로 살며 출입국관리와 체류자격을 배워야 했다고 말한다. 국적자는 체류자격이라는 말 자체를 몰라도 생활할 수 있지만, 외국인은 체류기간, 자격 변경, 취업 가능 범위, 가족관계, 사회보험, 행정 절차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말 재류외국인은 400만 명을 넘었다(Immigration Services Agency of Japan, 2026). 이 수치는 외국인이 예외적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지만, 제도의 언어는 여전히 국적자를 기준으로 조직된다.
미디어는 외국인을 노동력, 치안, 관광, 인구 감소 대책의 언어로 자주 다룬다. 그런 프레임은 정책 설명에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외국인을 권리 주체보다 관리 대상으로 위치시키기 쉽다. 리 코토미가 말한 방어적 지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제도와 보도 양식이 국적자를 기준으로 작동할수록, 외국인은 자신의 생활을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행정 언어를 배워야 한다.
대만 문제와 선택적 연대
일본 정부는 1972년 중일 공동성명 이후 대만 문제에 대해 외교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1972). 이 구조 속에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말은 국제정치에 대한 특정 견해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만 출신자에게 그 말은 자신의 출신지와 정치적 주체성을 지우는 언어가 된다(李琴峰, 2026, pp. 216–217). 리 코토미의 글은 국가 간 외교 문구가 개인 정체성의 조건으로 침투하는 장면을 포착한다.
평화주의의 언어도 양면적이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경계하는 문제의식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을 피하자는 말이 대만인의 자기결정권을 지우는 방식으로 쓰이면, 그것은 평화의 이름을 빌린 삭제가 된다. 동아시아 미디어론에서 대만 문제는 국가 간 전략 경쟁의 프레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프레임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언어, 이동과 안전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
한국 사례: 제한적 인정과 지속되는 논쟁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판결의 의미와 한계
한국 대법원은 2024년 7월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다(대법원, 2024). 이 판결은 동성 커플을 사회보장 영역에서 사실상 가족관계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Library of Congress도 이를 한국 성소수자 권리의 주요 판례로 소개했다(Umeda, 2024). 그러나 판결은 혼인 평등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 제도의 특정 영역에서 차별적 처분을 취소한 판단일 뿐이다.
이 차이를 흐리면 부분적 인정은 곧 충분한 평등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감각이 생길 수 있지만, 혼인, 상속, 세금, 입양, 체류, 병원 보호자 지위는 여전히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리 코토미가 일본 파트너십 제도를 두고 지적한 착시가 한국에서도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셈이다(李琴峰, 2026, pp. 214–215).
차별금지법 논쟁과 사회적 합의 프레임
한국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오랫동안 제정되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지만(국가인권위원회, 2006), 정치적 논쟁은 반복적으로 지연되었다. 반대 담론은 주로 역차별, 표현의 자유 침해, 종교의 자유 침해, 동성애 조장 같은 프레임을 사용한다. 찬성 측은 헌법상 평등, 국제인권규범, 피해 구제의 실효성을 강조한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라는 말이 중립적 절차의 언어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복될수록 법 제정 지연을 정당화하는 담론이 된다. 김종우와 서현수(2022)는 차별금지·평등법 제정 과정에서 대중매체 등 미디어의 담론 효과가 중요한 변수로 확인된다고 분석한다. 리 코토미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개인 경험을 넘어 입법 지연을 설명하는 미디어론적 변수와 연결된다.
트랜스젠더 성별정정과 특별법의 부재
한국에는 일본의 성동일성장애 특례법과 같은 별도 법률이 없다. 성별정정은 주로 법원 허가와 예규에 의존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성별정정 관련 대법원 예규 중 수술요건 등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조항의 개정을 권고했다(국가인권위원회, 2023). 명시적 법률 부재는 예측가능성을 낮추고, 법원·지역·사건별 차이를 키운다.
일본은 법이 있으나 그 법의 요건이 문제이고, 한국은 특별법 부재가 문제다. 두 경우 모두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법적 성별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신체, 가족관계, 의료 기록, 사회생활을 국가가 요구하는 형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성별정정은 개인의 내면 정체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국가가 인정 가능한 시민의 조건을 정하는 장면이다.
이주민 정책과 행정 지식의 비대칭
한국의 체류외국인은 2026년 4월 기준 286만 명대에 이른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2026). 이주민은 체류자격, 노동허가, 건강보험, 가족 초청, 자녀 교육, 지역 행정 절차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 한국 국적자는 대부분 이런 제도 언어를 몰라도 생활하지만, 이주민에게 그 지식은 주거와 노동, 의료와 가족을 좌우한다.
미디어 보도에서 이주민은 노동력 부족의 대안, 불법체류 문제, 범죄 우려, 다문화 가족, 지역소멸 해결책으로 자주 등장한다. 각 프레임은 정책 설명의 기능을 갖지만, 반복될 경우 이주민을 권리 주체보다 관리 대상이나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위치시킨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보도준칙은 이주민을 범죄자나 전염병 원인 제공자처럼 몰아갈 수 있는 표현을 경계하라고 권고한다(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2026).
한국 미디어의 소수자 재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관련 보도는 종교단체 반대, 지방자치단체의 행사 허가, 경찰 통제, 혐오 표현 논란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성소수자는 독립된 시민이라기보다 사회 갈등의 원인처럼 보일 수 있다. 반면 이성애자의 결혼, 출산, 육아, 연애는 갈등 프레임을 거치지 않고 생활면과 문화면의 소재가 된다.
장수아와 남재일(2022)은 2001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주요 신문의 트랜스젠더 관련 기사 695건을 분석하며, 질병, 종교적 죄악, 사회 질서 혼란, 성적 대상화 프레임과 소수자 보호, 사회적 인정, 공적 권리 프레임이 신문별로 다르게 작동한다고 정리했다. 특히 과소재현은 중요한 문제다. 미디어는 소수자를 나쁘게 재현할 뿐 아니라 충분히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도 생존의 조건을 주변화한다.
대기업 마케팅과 역사적 무감각
대기업의 역사적 무감각은 같은 구조를 다른 영역에서 드러낸다.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을 포함한 텀블러 프로모션을 진행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탱크’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폭력을, ‘책상에 탁!’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스타벅스는 문구를 수정한 뒤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했다(MBC뉴스, 2026; 오마이뉴스, 2026). 이 사례는 역사적 폭력의 기억이 기업 홍보의 언어 속에서 얼마나 쉽게 탈맥락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건은 성소수자·이주민 재현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공통점은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과 기억의 조건인 언어가 다른 사람에게는 중립적 기획어, 상품명, 유행어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광주와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역사적 상처로 읽어야 하는 사람과, 그것을 단순한 카피로 처리할 수 있는 조직 사이의 간극은 무지할 수 있는 특권의 또 다른 형태다. 미디어가 이 사건을 단순한 ‘마케팅 실수’로 축소하면 문제의 초점은 소비자 불쾌감으로 좁아진다. 반대로 역사적 기억이 어떤 권력 관계 속에서 상품화되는지 묻는다면, 기업 커뮤니케이션도 동아시아 미디어론의 분석 대상이 된다.
한국과 일본의 비교
부분적 인정의 두 경로
한국과 일본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갖춘 고소득 사회이며 국제인권 담론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성소수자와 이주민의 권리 보장에서는 지연과 제한이 반복된다. 일본은 지방정부 파트너십 제도가 넓게 확산되었지만 전국 단위 동성혼은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판결이라는 중요한 사법적 진전을 이루었지만 동성혼과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부재하다.
두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착시를 만든다. 일본에서는 “파트너십이 있으니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인식이, 한국에서는 “건강보험 판결이 나왔으니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부분적 인정은 평등의 시작이지 완결이 아니다. 인정의 범위와 효력, 집행 가능성을 구분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 비교 축 | 일본 | 한국 | 분석적 의미 |
|---|---|---|---|
| 동성 커플 인정 | 지방자치단체 파트너십 확산, 일부 법령상 인정 확대, 전국 동성혼 부재 | 2024년 건강보험 피부양자 판결, 동성혼 부재 | 부분적 인정과 전체적 평등 사이의 간극 |
| 성별정정 | 특례법 존재, 2023년 생식능력 상실 요건 위헌 판단 | 특별법 부재, 법원 실무와 예규 의존 | 법률 존재 여부보다 요건과 실무가 실제 권리를 좌우 |
| 외국인·이주민 | 재류외국인 400만 명 초과, 체류자격 중심 관리 | 체류외국인 286만 명대, 비자·노동·보험 복합 관리 | 국적자는 몰라도 되는 행정 지식이 이주민에게 집중 |
| 미디어 프레임 | 파트너십을 혼인처럼 오해하거나 대만 문제를 진영 논리로 단순화 | 성소수자·차별금지법을 논란과 사회적 합의로 프레이밍 | 제도적 불평등보다 다수자의 불편함이 전면화될 수 있음 |
권리 요구의 논란화
두 사회에서 소수자 권리 문제는 자주 개인의 권리보다 사회적 논란으로 구성된다. 일본에서 동성혼은 헌법 해석과 가족제도의 안정성 문제로,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문제로 프레이밍된다. 스타벅스코리아 사례처럼 역사적 폭력의 기억도 기업 홍보 언어 안에서는 제품명과 할인 이벤트의 일부처럼 재배치될 수 있다. 이런 쟁점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프레임의 반복이 당사자의 구체적 불이익과 고통의 맥락을 주변화한다는 데 있다. 권리 요구나 역사적 항의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주장으로 보이고, 현재 제도의 불평등과 기억의 비대칭은 자연스러운 배경처럼 남는다.
차이도 중요하다. 일본은 지방정부와 사법부의 변화가 누적되어 중앙정치에 압력을 가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한국은 온라인 뉴스, 유튜브, 커뮤니티, SNS, 정당정치가 결합하면서 성소수자·이주민 문제가 빠르게 동원되고 빠르게 소진된다. 속도는 다르지만 당사자의 삶이 단발성 이슈로 소비될 때 제도적 맥락이 사라진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비교의 한계
한일 비교는 순위 매기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어느 사회가 더 진보적이고 어느 사회가 더 후진적인가를 따지는 방식은 제도적 세부를 가린다. 더 중요한 질문은 각 사회가 어떤 영역에서는 소수자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다른 영역에서는 그 효과를 제한하는가이다. 또 어떤 미디어 프레임이 이러한 제한을 문제로 보이게 하거나, 이미 충분히 인정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가이다. 리 코토미의 텍스트는 이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분석적 출발점이다.
비판적 검토
설득력
리 코토미의 주장은 소수자의 경험이 왜 사적 경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곧바로 정치적 발화로 분류되는지 설명한다. 개인의 예민함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초점을 옮긴다는 점에서 강한 비평적 설득력을 갖는다. 외국 국적, 성소수자, 논시스젠더, 대만 출신이라는 교차적 위치는 단일한 정체성 범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조건을 보여준다(Crenshaw, 1989).
텍스트의 장점은 무엇보다 질문의 방향 전환에 있다. “왜 소수자는 정치적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가 그 삶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한국과 일본의 제도 비교에서도 유효하다. 부분적 인정은 진전이면서 동시에 착시를 낳고, 미디어는 그 착시를 확대하거나 교정한다.
한계
활동가라는 호명이 언제나 부정적 프레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많은 사회운동은 당사자의 자기명명과 자긍심을 통해 힘을 얻었다. 활동가는 전문 직업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수행하는 시민의 이름일 수도 있다. 따라서 문제는 활동가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당사자의 동의 없이 특정 정체성 때문에 자동 부여되는 방식이다.
무지를 허락받는 위치도 단순한 다수자/소수자 이분법으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수자 내부에서도 계급, 지역, 장애, 학력, 나이, 노동시장 위치에 따라 행정 지식의 부담은 다르게 배분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고령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복잡한 제도 언어를 익혀야 한다. 특권은 단일 축이 아니라 여러 축이 교차하는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
소수자의 사적 경험이 공적 문제로 정치화될 때 제도 변화가 가능해지는 측면도 있다. 가정폭력, 성희롱, 장애 접근권, 학교폭력, 산업재해는 한때 사적 문제로 취급되었지만 정치화 과정을 통해 법과 제도의 언어가 되었다. 목표는 정치화의 거부가 아니라 당사자의 경험을 왜곡하지 않는 공적 의제화다. 정치화와 낙인은 구분되어야 한다.
대만 논의도 세밀한 구분을 요구한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경계하는 평화주의는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대만인의 자기결정권을 지우는 평화주의적 언어는 비판되어야 한다. 비판의 초점은 평화주의 일반이 아니라, 당사자의 현실을 삭제하는 발화 방식에 맞춰져야 한다.
미디어 비판의 균형
미디어는 소수자 담론을 논란으로 축소하기도 하지만, 법원 판결, 차별 사례, 당사자 인터뷰, 국제인권 기준을 공론장에 올리는 역할도 한다. 한국의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판결과 일본의 동성혼 소송은 보도를 통해 대중적 의제로 성장했다. 문제는 미디어 자체가 아니라 어떤 프레임이 반복되고 누가 해석권을 갖는가이다.
학술적 논의 역시 당사자에게 더 많은 설명 책임을 떠넘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제도 지식의 강제성을 분석한다는 명목으로 소수자가 다시 자신의 삶을 증명하도록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 코토미의 통찰은 소수자가 더 잘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다수자가 몰라도 되는 구조를 문제 삼는 데 있다.
동아시아 미디어론적 함의
명명의 권력
동아시아 미디어론의 핵심 쟁점은 명명의 권력이다. 소수자는 보도되는 대상일 뿐 아니라 어떤 이름으로 보도되는지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달라진다. 활동가, 논란의 당사자, 피해자, 다양성의 상징, 노동력, 치안 위험, 다문화 가족 구성원이라는 명명은 서로 다른 정치적 효과를 만든다. 재현은 의미를 생산하는 실천이며(Hall, 1997), 리 코토미에게 붙은 활동가라는 직함도 그의 글쓰기와 정체성을 특정 의미망 안에 배치하는 행위다.
공론장의 위계
공론장은 평등한 토론 공간으로만 상상되기 어렵다. Fraser(1990)는 실제 공론장이 성별, 계급, 인종, 지위에 따른 배제와 위계를 내포한다고 비판했다. 동아시아의 소수자 담론에서도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발언은 같은 무게로 취급되지 않는다. 전문가, 정치인, 종교 지도자, 댓글 다수의 감각이 당사자의 경험보다 더 큰 설명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담론 분석은 단어의 선악을 가르는 작업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 “혼인에 상당”, “내정”, “전통 가족”, “탱크데이” 같은 말이 누구의 시간을 늦추고 누구의 무지를 보호하는지 묻는 작업이다. 낙인은 부정적 이미지 몇 개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결합한 분류의 문제다(Link & Phelan, 2001). 따라서 미디어 실천은 긍정적 이미지를 추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문제의 원인과 책임, 해결책을 조직하는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보도 방식의 과제
미디어는 부분적 제도 인정을 전체적 평등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 파트너십 제도와 법률혼,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과 동성혼, 성별정정 예규 개정과 특별법 제정은 구분되어야 한다. 당사자 발화는 ‘논란’의 한쪽 의견으로만 배치되지 않아야 하며, 제도적 사실과 생활상의 영향을 함께 설명해야 한다. 반대 입장을 소개할 때에도 그 주장이 어떤 권리 제한을 정당화하는지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별도의 윤리적 장식이 아니라 인권보도준칙이 요구하는 기본선과도 맞닿아 있다(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2026).
결론: 정치화의 원인과 미디어론적 함의
리 코토미의 텍스트가 밝히는 것은 소수자 발화의 정치성이 아니라, 그 정치성을 생산하는 사회적 조건이다. 어떤 삶은 생활 서사로 승인되고, 어떤 삶은 활동이나 논란으로 분류된다. 이 차이는 개인의 성격에서 오지 않는다. 제도적 안정성을 몰라도 유지할 수 있는 위치와, 제도를 알아야만 생활을 방어할 수 있는 위치의 차이에서 온다.
한국과 일본의 비교는 이 비대칭이 특정 사회의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일본의 파트너십 제도와 한국의 건강보험 판결은 모두 중요한 진전이다. 동시에 둘 다 혼인 평등이나 포괄적 차별금지의 완성을 뜻하지 않는다. 일본의 성별정정 법제와 한국의 특별법 부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당사자에게 증명 책임을 부과한다. 외국인·이주민 정책과 대만 문제는 국적과 국제정치가 개인 정체성의 주변 조건이 아니라 생활 조건임을 드러낸다.
학술적 함의는 세 가지다. 첫째, 소수자의 권리 담론과 역사적 기억의 논란은 정체성의 특수성만이 아니라 제도 지식과 기억 지식의 불평등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둘째, 부분적 인정은 진전이면서도 불평등을 가리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셋째, 미디어는 소수자 발화와 역사적 항의를 논란의 장면으로 소비할 수도, 제도적 불평등과 기억의 비대칭을 설명하는 공론장의 지식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동아시아 미디어론의 과제는 바로 이 번역의 조건을 묻는 데 있다.
결국 질문은 “소수자는 왜 정치적인가”가 아니다. “누가 소수자의 삶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가”이며, “왜 어떤 사람은 제도를 몰라도 되고 다른 사람은 제도를 알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을 유지할 때 ‘활동’은 낙인의 이름이 아니라 공적 학습의 계기가 된다. 이때 성찰적 경청은 소극적 태도가 아니다. 당사자의 언어를 논란의 소음으로 축소하지 않고 제도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일, 곧 미디어론적 의미에서의 행동하는 양심이다. 다수자가 자신의 무지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성찰하고, 미디어가 당사자 경험을 정당한 지식으로 다룰 때, 소수자의 생존 발화는 예외적 논란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해석해야 할 사회적 사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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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기준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재학생으로, 동아시아미디어론 수업에서 리 코토미의 글을 바탕으로 젠더, 제도, 미디어 프레이밍의 문제를 한일 비교의 관점에서 비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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