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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디어 번역과 해제

사회학 졸업생들을 위한 축사 - 이 시대의 사회학, “어중간한 사회인이 되자”

by 배하영 2026. 6. 22.

사회학 졸업생들을 위한 축사 

- 이 시대의 사회학, “어중간한 사회인이 되자”

저자 | 니헤이 노리히로(仁平典宏)

옮긴이 | 배하영

출처 |世界 SEKAI 2026.03

 

  여러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처음에는 "사회학이 대체 뭐야?" 하는 상태였겠지만, 어떻게든 졸업 논문을 써내고 오늘 이 자리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의 테마는 저마다 달랐으나, 각자 자신이 선택한 문제와 마주하며 끝까지 써 내려간 그 과정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이제 곧 새로운 직장으로 가게 되는데, 준비는 다 끝내셨나요? 연구용으로 썼던 책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메루카리(중고 거래 앱) 같은 곳에 팔 건가요? 그 책들을 손 닿는 곳에 남겨두면 교육, 환경, 복지 등 각자의 업무에서 도움이 될 때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졸업생들의 취업처는 컨설팅, IT, 상사, 제조업, 금융, 유튜버 등 아주 다양하군요. 언젠가 어디선가 사회학적 지식은 반드시 무언가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니, 냄비 받침 같은 용도 말고 말이에요.

 

  확실히 멤버십형 고용이라 불리는 일본의 직장 구조에서는[1] 특히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대학에서의 배움을 그대로 업무에 활용할 기회가 적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사회학에서 격차나 인권에 대해 배웠다고 하면 회사 측에서 경계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취업 준비를 하며 대학 시절 힘썼던 일(가쿠치카)’로 세미나 활동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리더나 동아리 부회장으로서 인간관계를 조정했다는 식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어필에 매진한 분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은 당장 업무와 관계없어 보여도, 야노 마사카즈나 혼다 유키 씨 등의 연구가 보여주듯 스킬 형성과 급여 측면에서도 플러스가 되며,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든든한 힘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차별부터 마이크로어그레션(미세 차별), 생활 불안, 친밀한 관계에서의 억압까지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학은 다양한 문제 경험을 분석하고 지견을 축적해 왔습니다. '내가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회적 통념에 현혹되지 않고, 마음속의 답답함을 언어화하여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그 지식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회학적 지식의 재귀성

  다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따로 있습니다. 사회학은 그동안 소수자(마이너리티)의 고충을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자신의 소수자성을 별로 자각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격차 사회'라는 것은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한편, 어느 정도의 기복은 있을지언정 대체로 평생 높은 행복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풍족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소위 '난관'이라 불리는 대학에 입학하고, 주류(Majority) 속성을 듬뿍 가진 사람일수록 그렇게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사회학적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괜찮아요"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될까요?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사회학적 지식이 가진 '재귀적 의미'가 신경 쓰이기 때문입니다. 사회학 역시 '과학'을 지향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기술하는 '사실'에 관한 것도 가치의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사회학자 이치노카와 야스타카 씨는 '사회적'이라는 개념이 기원적으로 평등이라는 이념과 결부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사회학은 평등이나 연대라는 가치에 헌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논의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논의가 유의미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사회를 기술하는 것과 이러한 가치를 실제로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한 상위권 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로 비정규직 고용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해 설명했을 때의 일입니다. 수업 후 제출된 코멘트 페이퍼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인 분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사귈 상대를 고를 때, 리스크가 적은 정규직인 사람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아니, 잠깐만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 코멘트는 의외로 수업 내용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문제의 배경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인생 선택으로서는 파트너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피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저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방식까지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반응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이러한 사회학적 지견의 의도치 않은 재귀적 효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사를 통해 확인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복잡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이후의 인생에서도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기 쉽다"라는 사회학적으로 타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일수록, 배우자를 고를 때 "상대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을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사회학자가 기회의 불평등이나 특정 집단의 취약성에 대해 발신할 때는 그것을 교정하려는 움직임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오히려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생존 지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회학에서는 리스크를 회피하며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이나,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 행동하는 개인을 분석 모델로 상정하곤 합니다. 분석에서는 그런 인간상을 전제하면서, 정작 독자에게는 공공적 가치에 기반한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자기중심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인이 되세요!」

 

  사회학의 배움은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계층 재생산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은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하고, 재분배에 힘쓰는 정당에 투표하기 위한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이 분열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번거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마지막이니 잠시만 함께해 주십시오.

 

  약 10년 전, 상사와 술을 마시러 간 신입 사원이 감자튀김을 시켰더니 "언제까지 학생 기분으로 살 거냐!"라며 꾸지람을 들었다는 게시물이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연배가 있는 층에서는 상사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사회인’(이 표현 역시 교육 과정을사회의 구성 요소에서 자의적으로 제외하는, 일본 특유의 불가사의한사회이해 방식입니다만)이 되기 위해서는 업무 내용이나 직업윤리뿐만 아니라, 취향을 포함한 삶의 스타일까지도 통째로 바꾸기를 기대받는 듯합니다. 인격적 포섭을 요구하는 일본의 직장 문화 특유의 모습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젊은이도 재해 복구를 위해 주말에 봉사 활동을 다녀왔더니, 직장 상사로부터 비슷한 비아냥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재해 지역의 현실이라는 사회로부터 멀어져야만 하는 모양입니다.

 

  ‘학생 기분이나 사회인이라는 단어가 자의적으로 운용되어 정체성의 일부를 배제하거나 재조합하도록 촉구하는 것, 그런 압박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점은 여러분의 우수함이 이러한 압박에도 앞장서서 응답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험 공부를 하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고, 대학에서는 동아리나 아르바이트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교수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세미나 발표를 하고 졸업 논문을 완성해 왔습니다. 그와 똑같은 유능함과 열정으로 사회학을 잊은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갈 미래가 눈에 보입니다. 졸업 논문을 쓸 때 발휘했던 그 능력은 부동산을 팔 때에도 십분 발휘될 것입니다.

 

  물론 그사이에도 사회적 과제들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쓰고 있어서는 눈앞의 과업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실한 사람일수록 부인(Denial)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도 합니다. 늘 성실하게 전력을 다하는 사람이기에, "사회 과제에 관여하려면 제대로 본격적으로 해야 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어설프게 하려 해봤자 어차피 어중간해질 테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여기게 됩니다. 젊은 사원의 봉사 활동에 학생 기분이라고 비아냥거린 상사도, 어쩌면 이런 사고 과정을 거쳤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분열되어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여기서 '더 다양한 세상에 눈을 돌리자!'고 평범하게 말해봤자 '대학 시절'이라는 이름의 추억 폴더 속에 동아리 티셔츠 같은 것들과 함께 봉인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폴더에서 기어 나와 여러분의 마음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기에, 아예 정반대의 이야기인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현재 불평등의 큰 부분은 금융 자산 격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국민연금이나 후생연금에 더해, iDeCo(개인형 확정기여연금)쓰미타테 NISA’로 자산 형성을 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3] 다양한 금융 상품을 선택해 자산 배분을 짜고 매달 투자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전후에는 주택 담보 대출을 통해 '일억 총 채무자 사회'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일억 총 투자가 사회'가 목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4] 이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어딘가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평화를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원유값이 오르고, 관련된 보유 펀드의 가격도 상승하면 그 사실에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이는 딱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자본주의 자체가 원래 그런 것입니다. 복지와 금융 자본주의는 대척점에 있는 이미지이지만, 이미 복잡한 중첩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그 복잡함이 개인의 자산 운용 수준에서 가시화되어 정체성을 분화시켜 나가는 것이 지금의 사태입니다. 무엇을 생각해도 구조적인 위선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역방향도 있습니다. 유엔에서 SDGs(지속가능발전목표)가 채택된 이래, 환경 부하가 높은 기업은 소송 리스크를 안게 되어 기업 가치가 훼손됩니다. 작년에는 일론 머스크의 언동이 서구 리버럴들의 반감을 사서 테슬라의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이기심을 관철하려 해도 반대의 결과가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죠. 트럼프 일행이 초조해하며 부수려 하는 것이 바로 그 복잡성으로, 순수하게 정제된 이기주의의 제국을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지구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절대적인 제약 조건이 있는 상황에서 탐욕은 이기주의의 조건마저 파괴합니다. 이기심만 생각하는 것은 취약합니다. 단기적인 수익만을 추구해서는 파국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적 자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형 '사회인'에 과도하게 적응하는 것은 한 종류의 자산에 올인하지 말라는 투자의 격언에도 위배됩니다. 할 거면 언제나 전력으로 임한다는 태도는 앞으로 리스크가 큽니다.

 

  이 이야기에서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분인(Dividual, 分人)이라는 히라노 게이이치로 씨의 논의를 떠올린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학생 기분'이나 '사회인'과 같은 발화는 본래 다원적인 존재를 일원화하려는 것이기에 부자연스럽습니다. 회식 후에 야간버스를 타고 재해 지역에 가거나, 페스티벌이 끝난 뒤에 배외주의 반대 데모에 참여하고, 자녀를 입시 학원에 보내면서도 빈곤 아동 지원을 하거나, 영업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힘쓰는 모습은 분열되어 있고 어중간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선이 구조적 조건이 된 상황 속에서, 이기주의에만 매몰되어 버리는 결벽함보다는 훨씬 건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계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냉소의 구조

  하지만 갑자기 봉사활동이나 사회 운동을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아냥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5] 사회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위선'이라며 냉소하는 현상은 일본에서 전전(戦前)부터 전통 예능처럼 이어져 왔습니다. 서로 돕는 문화나 기부 수준을 지표화한 국제 랭킹에서 일본은 항상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프1] 영국자선재단 CAF 세계 가치 조사 (World Values Survey) 국제 비교 데이터(2021) 자선 인도주의 단체 참여 비율(수평축)과 평균 신뢰도(수직축)를 국가별로 그래프로 표시했을 때 일본은 두 나라 모두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가깝습니다.

  또 일본 비하인가 싶으신가요? 그럼 칭찬도 해보겠습니다. 반상회 등 지역 조직을 통한 봉사 활동 경험률은 세계 수준과 비교해도 손색없습니다. 동일한 입장이나 집단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무급 노동은 일본이 강점을 보입니다. 정부는 이를 '잠재 자산'이라 부르며 자화자찬해 왔습니다. 장기적이고 호혜적인 인간관계를 전제로 금전적 대가 없는 봉사가 정당화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딩(결속)형 사회적 자본'입니다. 하지만 최근 유동성이 높아지며 장기적인 보상에 대한 현실감이 사라짐에 따라, 과거에는 묵묵히 참아냈던 것들이 '보람 착취(열정페이)'로 경험되기 시작했습니다.[6]

 

  반면 입장이 다른 타자와의 연결인 '브릿징(교량)형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는 냉소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닉 베리건(Nick Berigan) 등은 개인주의적이고 유동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타인에 대한 일반적 신뢰가 높아지고 자선 문화도 발달한다고 지적합니다.[7] 일본에서 냉소주의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것이 구태의연한 권력 구조와 친화적이기 때문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엘리트

  이러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데 있어 여러분은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사회인'으로 평범하게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 사회 문제에 액션을 취할 때, 기존의 틀을 흔드는 교란 효과는 더 큰 법입니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학자가 되기보다, 월 스트리트에서 돈을 벌어 유익한 활동을 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더 큰 임팩트를 준다고 생각하는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는 서구 엘리트들 사이에서 인기입니다.[8]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세계의 부호들이 "우리에게 영구적인 증세를 하라!"라고 요구하는 운동도 있었습니다.[9]

 

  하지만 일본에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가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을 '위선'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부호들이 자선 사업을 해도 악행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며 비난받았습니다.[10] 전후에는 수험의 승자가 엘리트가 되는 대중 교육 사회가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공부벌레', '아싸' 같은 인격 공격이 뒤따랐습니다.[11] 그런 환경 속에서는 적응 전략으로서 "어쩌다 시험을 잘했을 뿐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라며 '평범함'을 연기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 결과 앞장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자각은 생겨나기 어려워졌습니다. 대중 교육 사회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엘리트'를 만든 것입니다.

 

  물론 서구의 엘리트들도 기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국의 19세기는 신사의 가면과 사적 욕망이 분열되는 소설들이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을 쓰고 계속 연기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가면을 쓴 엘리트의 위선적인 오기에 의한 '계급적 타협'의 산물로서 복지국가적 뼈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가면을 내던져 버리고 사적 욕망이라는 짐승에게 굴복하는 권력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내일을 향하여

  사회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 공부는 공공성이라는 가면을 쓰는 연습이라는 의미도 있을지 모릅니다. 가면의 어원인 '페르소나''퍼스널리티'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위선'의 어원 또한 '연기하다'입니다.[12] 자신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문제에 매달렸던 경험은 여러분 안에 분명 분기(分岐)적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그 작은 '분인(分人)'을 기업 논리에 매몰된 '사회인'이라는 틀로 가려버리지 않고, 다양한 사회와 연결되는 사회인의 구성 요소로서 살아 숨 쉬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격차가 줄어들면 여러분이 만약 부자가 되더라도 얻게 될 유익이 큽니다.[13] 부유층이 이기심을 극대화하려 하면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반대로 사회를 돌보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과 연결됩니다.

 

둘째, 의외로 시대적 트렌드에 올라탈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겉치레''꽃밭(낙관론)'이라 치부되던 일들이 지금은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성별 역할 분업 의식도, 청소년들의 타자에 대한 관용적 태도도 계속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14][15] 사회가 더욱 포용적으로 변해갈 가능성은 인류사적 트렌드입니다.[16] 사회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기도 합니다.[17]

 

셋째, 사회학이 걸어온 '주술'이 풀릴지도 모릅니다. 나의 선택이 결국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가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카운터(Counter) 선택'도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기부, 온라인 서명, 윤리적 소비 등 방법은 다양합니다.[18]

 

  사회학은 결코 여러분이 가진 과거의 노력이나 부모님의 마음을 부정하고 죄책감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리스 마리온 영이 지적했듯, 사회학적 지식은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짊어지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19]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졸업은 사회학을 실천해 나가는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눈부신 활약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역자 주

본문에 표시된 [1]~[19]의 주석은 원문에 없는 것으로, 한국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관련 개념, 사회적 배경 및 참고문헌 정보를 보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1] 멤버십형 고용: 특정 직무나 업무 범위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인재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고용 형태. 직무가 사람을 따라가는 서구권의 직무형(Job) 고용과 달리, 사람이 회사에 맞춰지는 방식을 취합니다.

[2] '사회인'이라는 용어의 한계: 교육 과정이나 학교도 사회의 중요한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사회인'은 보통 '돈을 버는 직업인'만을 지칭합니다. 저자는 취업을 하는 순간에만 "사회에 나간다"고 표현하는 이러한 자의적인 이해 방식을 비판합니다.

[3] iDeCo 및 쓰미타테 NISA: iDeCo는 본인이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해 운용하는 일본의 사적 연금 제도로 강력한 절세 혜택을 제공합니다. 쓰미타테 NISA는 일본 금융청이 인증한 적립·분산 투자 전용 비과세 계좌입니다.

[4] 일억 총 투자가 사회 (부록 참조):

- "일억 총 채무자 사회"의 유산과 한국의 '영끌': 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개인과 정부 모두 부채에 저당 잡힌 일본의 상태. 이는 한국의 가계부채 급증 및 부동산 '영끌' 현상과 강력하게 공명합니다. 자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빚을 내고 평생 노동을 투여해야 하는 구조는 양국이 공유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 "일억 총 투자가 사회"로의 전환과 금융화된 정체성: NISA iDeCo 확대는 '안정적 고용 모델'의 붕괴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국가에 노후를 맡기던 시대에서 개인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자기 책임형 사회로 강제 이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시민이 투자자가 되는 순간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기보다 자신의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우선시하게 되어 '구조적인 위선자'가 되는 딜레마를 낳습니다. (한국 역시 IRP 장려 및 2030 세대의 주식·코인 열풍을 통해 비슷한 '금융화된 생존 전략'과 구조적 위선을 겪고 있습니다)

[5] 지코만오츠(自己満乙) 및 쿠소리프(クソリプ): '지코만오츠'는 혼자만 만족하는 한심한 행동이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이며, '쿠소리프'는 무례하고 쓸데없는 악성 답글을 뜻합니다. 사회적 실천을 향한 온라인의 냉소를 나타냅니다.

[6] 보람 착취: 冷笑する社会とボランティア――『やりがい搾取批判えて참고

[7] 브릿징형 사회적 자본과 일반적 신뢰: Berigan, N., & Irwin, K. (2011). Culture, Cooperation, and the General Welfare. Social Psychology Quarterly, 74(4), 341360. 참고

[8]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를 활용하여 자원 투입 대비 최대의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철학. 고소득 직종에서 얻은 부를 기부하는 '기부를 위한 벌이(Earn to Give)'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9] 밀리어네어스 포 휴머니티(Millionaires for Humanity): 팬데믹 위기 속에서 전 세계 억만장자들이 자발적으로 정부에 '영구적인 부유세(Wealth Tax)' 도입을 촉구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운동.

[10] 가스 배출용 담론(ガス的言説): 계급 간의 갈등이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불만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담론. 성공한 자들을 향한 야유나 비하를 통해 근본적인 구조 비판을 차단하는 기제로 작용했습니다.

[11] 엘리트를 향한 멸칭: '가리벤(공부벌레)', '네쿠라(성격이 어두운 사람)', '인캬(아웃사이더)' 등의 인격 공격은 엘리트들 스스로 '평범함'으로 위장하게 만들어 당당한 사회적 책임 실천을 방해했습니다.

[12] 페르소나와 위선: 진정성만 강조하기보다, 공공성을 위해 일정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위선적 인내'가 복지국가와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힘임을 시사합니다.

[13] 웰빙과 격차의 상관관계: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부유층 또한 범죄, 건강 문제 등의 부정적 영향을 받습니다. Wilkinson, R. G., & Pickett, K. (2009). The Spirit Level: Why More Equal Societies Almost Always Do Better. 참고

[14] NHK 일본인의 의식조사: 장기 시계열 여론조사 결과, 성 역할 및 가족관 등에 대한 태도가 장기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변화해 왔음을 입증합니다.

[15] 지속 조사(継続調査): 동일 집단을 반복 조사하는 방식. 본문에서는 2010년대 이후 일본 중학생들이 타자에 대해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16]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저서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Pinker, S. (2011).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에서 인류사적으로 폭력은 감소하고 인권과 포용성은 증대되어 왔다는 '진보의 낙관론'을 주장했습니다.

[17] 리스트 실험(List Experiment)과 배외주의: 나가요시 키쿠코 등(2022)의 연구. 일본 사회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오히려 더 배타적인 답변을 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내어, 사회가 배타적일 것이라는 동조 압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8] 구조의 재생산과 카운터 선택: 구조적 모순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선택을 인정하되, 그 부채감을 상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부나 윤리적 소비 등 대안적 실천(Counter Selection)을 수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19] 아이리스 마리온 영(Iris Marion Young): 불평등 구조 유지에 기여하는 개인이 '정치적 책임'을 공유하며 연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연결 모델'을 제시한 정치철학자.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지는 주체적 행위(투기, Projet)를 강조했습니다. Young, I. M. (2006). “Responsibility and Global Justice: A Social Connection Model.” 참고

 

 

[부록] 일억 총 투자가 사회.pdf
0.36MB

 

 

저자 | 니헤이 노리히로(仁平典宏)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인 사회학자입니다. 시민사회 분석, 교육사회학, 복지사회학을 전공하며 현대 사회의 구조적 갈등과 그 안에서 개인이 맺는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볼런티어’의 탄생과 종언(「ボランティア」の誕生と終焉)』,헤이세이사 완전판(平成史【完全版】)』 (共著) 등이 있습니다.

 

옮긴이 | 배하영

사회학을 공부하며 한국과 일본 사회의 접점을 탐구하고, 언어와 번역을 통해 두 사회를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この社会の社会学_中途半端な社会人になろう 원문.pdf
10.70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