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생명을 책임지다
: 대지진 발생 시 보호자 인계 문제
글| 타부치 시오리
옮긴이| 조유빈
출처| 『세카이(世界)』2026년 3월호

동일본대지진 당시 희생된 히요리유치원(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원아들을 위한 위령비. 뒤쪽 석판에는 희생된 원아 4명의 이름에 사용된 한자를 넣어 만든 시가 새겨져 있다.
# 피해 예측에서 다뤄지지 못한 것
수도권 직하 지진이 발생해 840만 명의 ‘귀가 곤란자’가 발생한다는 예측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전철 운행이 중단되어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해진 역, 택시 승강장에 길게 늘어선 줄, 걸어서 귀가하려는 거대한 인파의 행렬일 것이다.
2025년 12월 19일, 일본 정부의 전문가 회의는 12년 만에 갱신된 수도 직하 지진 피해 예상 보고서를 발표했다. 총 117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규모 7급의 지진이 도심을 강타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로 사망자 1만 8천 명, 재해 관련 사망자 4만 1천 명, 전파되거나 소실되는 건물이 40만 동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추산이 담겨 있다.
정부는 840만 명에 달할 귀가 곤란자들에게 지진 직후 무리하게 귀가하려 하지 말고, 직장 등 안전한 장소에 3일 이상 머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히로이 유 도쿄대 교수 등은 이미 2016년에 이와 관련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평일 낮, 교통망이 마비된 도심에서 통근 및 통학자들이 일제히 귀가하려 할 경우 보도 곳곳에서 1㎡(전화부스 크기)당 약 6명이 몰리는 극심한 과밀 상태가 발생한다. 도로 역시 극심한 정체로 구급차 통행이 불가능해져 생명 구조가 어려워지며, 끔찍한 압사 사고까지 초래될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참사이며, 간토 대지진 이후 발생했던 대규모 화재도 우려된다. 실제로 이번 피해 예측에서도 지진 사망자의 70%가 화재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상정되었다.
#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생명
최근 들어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혼자 대피할 수 없는 ‘요지원자(지원 필요자)’에 대한 대책이 중점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이번 보고서에도 12년 전에는 없었던 다음과 같은 뼈아픈 지적이 추가되었다.
“맞벌이 가정이 많은 현실에서 보호자가 귀가 곤란자가 될 경우, 보육원이나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아이들이 시설에 그대로 머물러야 하며, 교직원들 역시 귀가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맞벌이 가구 비율이 70%를 넘어서고 남녀 불문하고 돌봄 책임을 지는 당사자가 늘어나면서, 이 문제가 비로소 가시화된 것이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아이의 학교와 부모의 직장이 수십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진으로 대중교통은 마비되고 화재와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들은 하염없이 부모의 마중만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고 아이들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 놀랍게도 보고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대책 방향성’ 부문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보고서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필자가 대책을 묻자, 마스다 히로야 전문가 회의 좌장은 “아이를 맡긴 보육 시설 측에서 평소 재난 대응을 고민하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훈련을 평소부터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원론적으로는 타당한 방향이지만, 아이들이 시설이나 학교에서 며칠씩 머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과 관련된 재난 대책은 부처 간 이기주의의 벽에 부딪히기 일쑤다. 보육원과 인정어린이원은 아동가정청, 유치원과 초·중·고교는 문부과학성, 재난 총괄은 내각부 방재 담당, 소방은 총무성 소방청으로 소관이 나뉘어 있다. 취재를 위해 연락하면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여러 부서를 전전하게 만들고, 결국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있다”는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오곤 한다.
이번 보고서를 반영한 향후 구체적 대책을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내각부 방재 담당: “향후 계획에서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하지는 않으며, 각 시설과 교육위원회, 지자체, 소관 부처의 판단에 맡긴다.”
- 아동가정청: “내각부 방재 담당의 요청이 있으면 검토하겠다.”
- 문부과학성: “각 학교에서 실정에 맞게 매뉴얼을 갱신해 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제자리걸음식 답변 속에서, 향후 신설될 ‘방재청’ 역시 현재의 인력 규모와 전망으로는 제대로 된 지휘탑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 “이제 보육사를 그만둬야 하나”-오쓰치 보육원의 비극
보호자의 ‘마중 문제’가 재난 대책 전체에서 각론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 당시 9명의 원아를 잃은 한 보육원의 비극을 먼저 알아주길 바란다. 이와테현 오쓰치정의 오쓰치 보육원(현 오쓰치 어린이원) 야기자와 유미코 원장(당시 부원장)의 증언을 바탕으로 2011년 3월 11일의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오후 2시 46분, 아이들이 낮잠에서 막 깼을 무렵 서 있을 수조차 없는 강한 흔들림이 덮쳤다. 보육실은 울음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야기자와 씨는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원내 방송으로 “선생님 곁으로 모이세요. 괜찮아, 무섭지 않아”라며 아이들을 달랬다.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차례로 노란 방재 모자를 씌운 뒤, 평소 훈련한 대로 110명의 원아와 함께 고지대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주차장으로 부모들이 차례차례 찾아왔고, 약 70명의 아이를 무사히 인계했다. 잠시 후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을 깨달은 직원들은 남은 40명의 아이와 함께 고지대 뒤편의 가파른 산을 네 발로 기어오르듯 필사적으로 대피했다. 산 위에서 아이들은 울지도 못한 채, 쓰나미에 휩쓸려 불타오르는 마을을 멍하니 바라보아야만 했다.
이틀 후 대피소에서 남은 아이들을 모두 인계한 뒤, 야기자와 씨는 편의점에서 부모에게 보냈던 70명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나섰다. 그중 9명의 행방이 묘연했다. 얼마 후 “노란 방재 모자를 쓴 아이가 시신 안치소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치소에서 마주한 것은 작은 오른손과 익숙한 무늬의 잠옷 조각뿐이었다. 편의점 앞에서 마지막으로 인계했던 원아 ‘T’였다. 대피하던 중 “무서워”라며 자신의 왼쪽 다리에 매달리던 아이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희생된 9명 모두 부모나 형제와 함께 있다가 변을 당했다. 야기자와 씨는 “왜 돌려보냈을까. 이제 보육사를 그만둬야 하나”라며 깊은 자책에 빠졌다.
보호자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보육원이 재개된 지 반년 후, 희생된 아이의 절친이었던 한 원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이 T한테 집에 가지 말라고 했어야 했잖아!”
그 순간 야기자와 씨는 아이들이 자신의 꿰뚫어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모두가 “T를 만나고 싶다”며 오열했다. 이후 직원들은 거듭된 논의 끝에 “재난 시에는 보호자에게 아이를 인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보호자들을 설득해 이해를 얻어냈다.
2019년 필자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3개 현을 조사한 결과, 보육원에서 부모에게 인계된 후나 휴원으로 집에 머물던 중 사망 및 실종된 아이는 무려 120명에 달했다.
#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이름의 책임 회피
반면, 보육 중에 사망한 아이는 단 3명이었다. 미야기현 야마모토정의 한 보육소에서 마중 오지 않은 아이들을 바닷가 인근 원내에 대기시키다, 뒤늦게 차량에 태워 대피하던 중 쓰나미에 휩쓸린 경우였다. 이처럼 학교나 시설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명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들도 소송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교사들이 아이들을 운동장에 대기시키다 적절한 대피 유도를 하지 못해 초등학생 74명과 교직원 10명이 희생된 이시노마키시 오카와 초등학교 참사, 본래 고지대에 있던 유치원에서 굳이 저지대를 지나는 통원 버스로 아이들을 돌려보냈다가 5명의 원아가 희생된 히요리 유치원의 비극이 있다.
다양한 사례를 종합해 볼 때, 아이를 보호자에게 인계하지 않는 것이 100%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재난 상황에서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지식과 판단력이 부족한 관리자가 여전히 존재하며, 지진 직후 내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부모의 본능적인 감정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가 데려간 이후나 하원·하교 중에 희생된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는 뼈아픈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2년 문부과학성이 실시한 피해 지역 조사에서도 “보호자와 하교 중 쓰나미에 휩쓸렸다”, “학교에 남은 동생을 데리러 온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전원 사망했다” 등 인계 후 희생을 언급한 답변이 최소 50건 이상 확인되었다. 피해 지역의 수많은 전직 교사와 보육사들이 아이를 인계한 것에 대한 뼈저린 후회를 안고 살아가지만, “유족들 앞에서 차마 입을 열 수 없다”며 굳게 침묵하고 있다. 반대로 아이들은 교사의 유도로 안전한 고지대에 대피했지만, 아이를 데리러 무리하게 이동하던 보호자만 휩쓸려 목숨을 잃은 비극도 존재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호쿠 지역에서는 보호자도 안전한 곳에 머무르게 하고,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는 데리러 와도 아이를 인계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널리 정착되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나 광역자치단체에 통합된 지침을 요구하면 “입지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 때문”이라는 변명만 되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시노마키시에서 통원 버스에 타고 있다 희생된 딸 아이리(당시 6세)의 어머니 사토 미카 씨는 이렇게 호소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에서 도망치지 말아 주십시오. 각각의 ‘케이스’를 먼저 알고 치열하게 논의해 주십시오.”
“아이들은 그 자리에 있는 선생님과 어른들에게 생명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말의 무게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 딜레마에 빠진 보호자와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이 문제는 더 이상 쓰나미나 수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진 역시 화재와 여진 등 복합 재난을 동반하며, 안전한 대피 장소는 시시각각 변한다. 부모가 아무리 빨리 데리러 가려 해도 물리적인 시간 차가 존재하며 그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평소부터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이 당사자로서 같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많은 어린이집과 학교가 “재난 발생 시 즉시 데리러 오라”고 안내하며 정기적인 ‘인계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보호자들은 무리해서라도 데리러 가야 한다는 강박과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2018년 오사카 북부 지진 때도 많은 보호자가 귀가 곤란자가 되었고, 보육원 교사조차 “내 아이를 먼저 데리러 가야 한다”며 혼란을 겪었다. 당시 지진은 출근 전인 오전 7시 58분에 발생했고 큰 여진도 없었으나, 만약 수많은 사람이 도심으로 출근해 있던 낮 시간대에 발생했다면 상황은 훨씬 끔찍했을 것이다.
내각부 전문가 회의 위원이자 지진학자인 오키 세이코 게이오대 준교수는 “많은 보호자에게 현실적으로 마중은 불가능하며, 그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지진 직후 일제히 움직이려는 행동은 교통 체증과 군중 압사 사고를 유발하며 인명 구조까지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키 교수는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며칠 뒤에 데리러 갈 때까지 서로 안전하게 버티자”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지원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물론 발달 특성이나 지병으로 인해 시설에 오래 머물 수 없는 돌봄 필요 아동들도 있다. 이들을 우선적으로 데리러 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일하는 모든 어른이 일제히 직장 등 안전한 장소에 머문다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각 현장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결코 일제히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
# 진정으로 생명을 지키는 길
책임론과는 별개로, 앞서 소개한 야기자와 원장은 지진 발생 후 거의 8년이 지난 2019년에야 언론 인터뷰에 처음으로 응했다. 참사가 잊혀지는 것에 대한 위기감과 무력감 때문이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평생 후회하며 짊어지고 가겠다”는 그녀의 기사에 “원장님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게까지 짊어질 필요 없다”는 위로의 댓글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은 책임 소재를 따지는 차원에 있지 않다. 진정으로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구조와 의식이 마련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 시설에서 아이를 부모에게 인계하면 형식적인 책임은 사라질지 몰라도, 그것이 생명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한 의문은 고스란히 남는다. 어른들이 서로 책임만 떠넘기는 구조는 사각지대를 만들고 때로는 보호하는 어른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제도의 허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재난 대피 훈련 기준은 소관 부처에 따라 제각각(보육원 월 1회, 유치원 연 2회, 초중고 연 1회)이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가장 높은 기준으로 통일해야 한다. 또한 현재 4~5세반 원아 25명을 보육사 단 1명이 책임지는 비현실적인 기준 속에서, 과연 대재난 시 안전한 대피가 가능하다고 믿는가? 정책 결정자들은 스스로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겠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유족과 보육사, 교사들이 쏟아내는 이 피맺힌 절규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잃어버린 아이의 생명은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아이와 어른 모두의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재난 대응 시스템의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재구축해야 할 때다.
[필자 소개]
타부치 시오리(田渕紫織)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이자 주간업데이트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와 과제를 폭넓게 취재하며, 재난, 아동, 사회보장 정책 분야를 중심으로 심층적인 보도를 이어오고 있다. 학사 및 석사 과정에서 재난사회학을 전공하여 재난과 사회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연구했다. 이와테현에서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을 취재한 것을 시작으로 치바와 오사카에서 사건, 사고를 취재했다. 이후 도쿄에서는 아동 정책, 사회보장, 재난 정책 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하며 사회적 약자의 삶과 제도적 과제를 조명해 왔다.
[옮긴이 소개]
조유빈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4학년 재학 중으로, 한국과 일본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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