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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디어 번역과 해제

정시 퇴근 Z세대와 쇼와·헤이세이 세대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by skfla2000 2025. 6. 15.

 

 

[달라진 업무관: Z세대는 왜 퇴근에 집착하는가?]

  야근이나 밑바닥부터 배우기를 싫어하고 매일 정시에 퇴근하며, 당연히 부서 회식도 거부하고, 조금만 엄한 지도를 받아도 “상처 받았다”며 회사에 나오지 않는… 이런 ‘Z세대’의 일하는 방식이 곳곳의 직장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24시간 일할 수 있습니까?”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열혈 직장인으로 살아온 단카이 세대는 “그렇게 해선 성장할 수 없다”, “직장인으로서 너무 나약하다”며 화를 냅니다. 그리고 실제로 Z세대와 접할 일이 많은 유토리 세대조차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곤혹스러워합니다. 서점에 가면 Z세대를 해설하는 책이 줄지어 놓여 있을 정도입니다.

 

[‘게으름’이 아니라 ‘새로운 길 찾기’]

  Z세대에 대한 통일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다케다 다니엘(竹田ダニエル) 씨의 저서 『세계와 나의 A to Z』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경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티스트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테니스 세계 챔피언 오사카 나오미(大坂なおみ) 선수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 세대는 다양성, LGBTQ, 환경문제, 리버럴 등의 키워드로 상징되고 하는데, 필자는 이들을 주제로 소설 『레이와 원년의 인생 게임』을 집필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에 매달리지 않고, 회사나 출세 경쟁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들을 게으르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행복의 목표나 그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히 두려운 일입니다.

  반면, 과거에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던 방식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한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 세대는 ‘의식 높은 대학생 붐’ 속에서 비즈니스 콘테스트나 인턴십에 열을 올리고, “인기 있는 취업처 랭킹” 같은 것을 들여다보며, 메가벤처나 컨설팅 회사, 혹은 광고대행사에 취직해 “압도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그 결과, 과로로 인한 안타까운 사건들도 여러 번 발생했습니다.

  즉, 우리 한 세대 위 사람들이 성공 사례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다음 세대인 Z세대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처럼 해서는 안 되겠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어디를 향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행복을 향한 탐색의 바통을 억지로 넘겨받은 그들은, 열심히 방황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직장에서의 Z세대의 행동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처럼 들립니다. “성장을 위해서”라며 강요된 야근이나 피나는 노력은, 실은 개인의 성장이 아닌 회사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근무시간 이후의 ‘회식 커뮤니케이션’으로 직원끼리 해결해왔던 문제들은, 원래라면 회사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한 Z세대와의 대화였습니다.

 

['새로운 행복'이라는 말의 모순]

  2022년, 필자는 ‘타워맨션 문학’이라는 장르로 소설가로 데뷔했습니다. 그 장르는 고급 아파트에 집착하며 경제적 성공이 곧 인생의 행복이라 믿고, 입시·취업·승진·이직이라는 끝없는 사다리 오르기에 매달리는 도시 생활자들의 고통을 묘사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Z세대 대표”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반박하며 달려들었습니다. “왜 굳이 도쿄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타워맨션에도 관심 없고요.” “학력 따위 중요하지 않고, 회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어요.” “타워맨션 문학적인 사고방식은 이미 낡았어요. 우리는 새로운 행복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어요.”

  그렇게 주장하는 그들 대부분은 도쿄 명문대에 다니고 있고, 도심의 고급 아파트에 비싼 월세를 내며 살고 있습니다. 샐러리맨 대신 인터넷 토론 방송에서 코멘테이터로 활동하며, 마치 ‘일본 Z세대 대표’라는 몇 안 되는 자리를 두고 다른 젊은이들과 경쟁하듯 필사적으로 어른들에게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세세한 차이는 있어도, 그 모습은 도쿄라는 도시에서 우리가 경험해온 경쟁과 소진의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럼, 새로운 행복의 형태란 대체 어떤 모습인가요?” 그들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습니다.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세대 갈등이 아닌 세대 계승으로]

  그들이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합니다. 비효율적이지만 인간다운 방식과, 효율적이지만 비인간적인 방식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기대하며, 우리를 효율적인 존재로 교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때로는 인간다움과 완전히 상반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타인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일은 인간에게 커다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결코 그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세대론이란, 어쩌면 인간이 인간다움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언제나 옳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낡은 세대의 실수를 배우며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요즘 애들은……”이라고 하며 세대 간의 단절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세대가 저지른 실수와 그로 인해 입은 상처를 솔직하게 전하고, 새로운 세대의 등을 조용히 떠밀어 주는 것 아닐까요?

 

 

 

* 이 칼럼은 『(문예춘추 오피니언) 2025년의 논점 100』(文藝春秋, 2025)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아자부 게이바조(麻布競馬場) 『레이와 원년의 인생 게임(令和元年の人生ゲー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