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38세였던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목했다. 밴스는 ‘러스트 벨트 (쇠퇴한 공업 지대)’라 불리는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주 출신이다. 그는 해병대 소속으로 이라크에 파병을 다녀온 후,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투자 회사를 설립하고 상원의원이 된 독특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다. 지방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층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그의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 미국의 번영에서 소외된 백인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J.D. 밴스는 이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가혹한 어린 시절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집을 떠났고, 어머니는 오랫동안 약물 중독에 시달렸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어머니는 남편을 계속 바꾸었으며, 아들인 그는 수차례 이사를 강요당했다. 가정 안에는 항상 고함과 폭력, 약물이 뒤섞여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동반 자살을 강요하기도 했다.
밴스는 자신의 과거를 ‘역경적 아동기 경험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ACE)’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는 ACE를 어린 시절 삶 속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괴물’로 규정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한다. J.D. 밴스는 ACE의 당사자로서 자서전을 통해 사회에 그 문제의식을 뚜렷이하며 환기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역경적 아동기 경험 (ACE)’이란, 18세가 되기 전까지 겪은 학대나 방임 피해, 그리고 가족 내 정신질환, 약물 및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노출 등과 같은 기능장애 상태에 놓인 가정환경을 의미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ACE 연구는 현재 국제적이고 학제적인 범위로 확산되고 있다. 그 주요한 발견은 ACE를 측정할 수 있으며 측정된 ACE 점수가 이후 삶에서의 건강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등과 통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관련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ACE 점수는 조사 대상자에게 18세가 되기 전까지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 뒤, 해당하는 역경 경험의 수를 단순히 더하여 산출된다. 대부분의 ACE 연구에서는 다음 10가지 역경 경험 항목이 다뤄진다. (신체적 학대, 심리적 학대, 성적 학대, 신체적 방임, 심리적 방임, 가족의 정신 질환, 가족의 약물 및 알코올 남용, 가정 내 폭력 노출, 가족의 수감, 부모와의 별거)

예를 들어, J.D. 밴스는 신체적 학대, 심리적 학대, 가족의 정신 질환, 가족의 약물 남용, 가정 내 폭력 노출, 부모와의 별거에 해당되어 ACE 점수 6점이라는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ACE 연구의 창시자인 의사 V.J. 패리티 등이 1998년에 발표한 논문 (전 세계적으로 12만 건 이상의 논문에서 인용됨) 에서는 ACE가 하나라도 있는 사람은 미국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라는 점, 그리고 ACE 점수가 높아질 수록 신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이나 문제 행동이 발생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는 점이 제시됐다. ACE 점수가 0에서 1, 1에서 2로 높아질수록 다양한 위험 요소가 단계적으로 증가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ACE 점수가 4 이상인 사람은 0인 사람에 비해 허혈성 심장질환은 2.2배, 뇌졸중은 2.4배, 암은 1.9배, 약물 사용은 10.3배, 자살 시도는 12배 더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나타났다.
즉, 유년기에 역경을 겪으며 성장한 사람은 심신의 질병이나 생활상의 문제 등 수많은 불이익에 노출되는 인생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
필자는 일본 사회에서의 ACE의 실태와 장기적인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 연구 성과를 저서 ‘ACE 생존자―아동기의 역경에 고통 받는 사람들’ (筑摩書房, 2023년)에 정리했다. 이 책에서는 일본 성인 약 2만 명의 데이터를 통해 ACE가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 약 40%에 달하며, ACE 점수가 높을수록 이후의 인생에서 질병, 저학력, 실업, 빈곤, 사회적 고립, 양육의 어려움 등 광범위한 불이익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인 ACE 생존자는 일본에서도 살아가기 힘든 삶을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역경의 연쇄’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에는 생물학적 경로와 심리사회학적 경로 두 가지가 있다 여겨진다. 어린 시절 장기간 반복되는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신경내분비계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이 조절 장애를 일으키고, 면역계와 스트레스에 민감한 뇌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뇌의 특정 영역이 위축되거나 비대해지고, 기능도 쉽게 저하될 수 있다. (이상. 1번 생물학적 경로)
또한, 스트레스가 많은 양육 환경에서는 생존 전략으로 음주, 흡연, 약물 의존, 위험한 성행위 등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진학 혹은 취업이나 자기 실현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며, 이를 보완할 사회경제적 자원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저학력이나 빈곤, 무직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상. 2번 심리사회학적 경로)
이처럼 ACE 생존자는 심신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모두 취약성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취약점을 보완해 줄 인간관계조차 부족한 채, 거듭되는 역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이 존재한다.
어찌 해야 ‘역경의 연쇄’를 멈출 수 있을까. 문화나 가족의 형태, 사회 계층 간의 분단 등 ACE 문제는 깊이 뿌리박힌 구조와 연관돼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ACE 생존자가 불행한 인생을 걷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J.D. 밴스가 역경을 견뎌내는 데 있어 사랑이 깊은 할머니의 존재를 원천으로 삼았다고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silience (회복탄력성) 에 대한 연구가 이르길, 어린 시절 부모 이외의 어른과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어른은 친척일 수도, 교사나 NPO 직원일 수도 있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결코 포기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어른의 존재가 역경 속에서 성장한 아이가 살아남는 열쇠 중 하나다.
역경에 처한 아이가 존엄성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ACE 문제는 우리에게 그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고 있다.
류코쿠대학 사회학부 준교수(龍谷大学会学部准教授) 미타니 하루요(三谷はるよ)
*이 칼럼은 『(문예춘추 오피니언) 2025년의 논점 100』(文藝春秋, 2025)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번역자 명주성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재학 중, 취미는 아동 문제 걱정하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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