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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디어 번역과 해제

또 하나의 교육, 오르타나티브 스쿨이란?

by skfla2000 2025. 6. 15.

 

 

 

[오르타나티브 스쿨의 개념과 등장 배경]

  오르타나티브 스쿨은, 일반적인 공립·사립 학교와는 다르게 독자적인 교육 이념이나 방침에 따라 운영되는 배움과 생활의 장을 총칭하는 말이다. 명확한 정의는 없으며, 프리 스페이스나 프리 스쿨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고, 가정에서 학습하는 홈스쿨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2022년에는 가와사키시(川崎市) 어린이 꿈 파크를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유메파의 시간(ゆめパの時間)』에서, 공설 파크 내에 있는 「프리 스페이스 엔(フリースペース「えん」/ Free Space "En")」의 존재가 널리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엔」에서는 아이들이 원칙적으로 시설 개관 시간 내라면 언제 와도 되고 언제 돌아가도 되며, 그날 하루 무엇을 하며 지낼지는 아이들 스스로가 결정한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도 존중받는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아이들에게 전하며,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어른들의 시선이 크게 호평을 받았다.

 

[다양화된 교육 선택지와 제도적 과제]

  국내에 오르타나티브 스쿨은 약 500곳 정도 있다고 하며(2015년 문부과학성 조사 기준 추산), 현재는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그 배경에는 ‘가치관의 다양화’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동·학생의 증가’가 있다. 20세기 교육에서 학교 교육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세계 및 일본에서 오르타나티브 스쿨의 실천이 알려지면서, 교육을 받는 장소로서 학교가 유일무이한 절대적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학교 이외에도 선택지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전국적으로 공립·사립을 포함한 야간 중학교 설치가 진행된 것도 진전이었다. 한편, 프리 스쿨 등의 시설에 대한 재정 지원에는 과제도 남았다.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을 수용하는 시설 중에는 교육뿐 아니라 아동 급식이나 복지 기능도 겸하고 있어, 지역의 선의를 모아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교육의 의미]

  “앞으로의 교육에서 읽기·쓰기·셈셈 외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문제 해결 능력”이나 “리더십” 등을 꼽는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 일본 교육에서는 개인 능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으나, 세계 교육계에서 현재 가장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이다.

  2023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만장일치로 「평화, 인권 및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교육 권고(平和・人権及び持続可能な開発のための教育に関する勧告 / Recommendation on Education for Peace, Human Rights and Sustainable Development)」(약칭)를 채택했다. 이 권고는 제목에 명시된 평화, 인권, 지속 가능한 개발 등 7개의 목표를 내걸고 있다. 구 권고에서 무려 반세기 만에 개정된 것이며,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194개국이 합의한 의의는 매우 크다. 권고에는 7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14가지 주도 원칙’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로 내세운 것은 ‘공공재’ 혹은 ‘공공선’으로서의 교육이다. 즉, 모든 사람이 교육 기회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개발도상국 문맥에서 논의되었으나, 세계화가 진행되고 코로나 팬데믹이 이를 가속하면서 선진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권고에는 ‘컨비비얼’이라는 단어도 등장한다. 컨비비얼은 일본어로 ‘화기애애함’, ‘자립공생적’ 등으로 번역되며, 학교란 본래 컨비비얼, 즉 서로를 배려하는 안심되고 즐거운 장소여야 한다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공교육 안팎의 실천과 과제]

  그러나 현대 학교 교육은 10년에 한 번씩 개정되는 학습지도요령과 검정 교과서 등을 비롯해 ‘언제까지 이것을 배워야 한다’는 계획성 위에 세워져 있다. 그 결과 학교는 일제 수업으로 모두에게 같은 것을 강요하게 된다. 반면, 오르타나티브 스쿨에서는 앞서 언급한 ‘엔’처럼 계획성을 가지면서도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중심으로 한 의사결정에 기반해 매우 유연한 배움이 실천된다.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비상 상황에서도 여백 있는 배움의 장은 강점이 된다.

  공교육에서도 오르타나티브 교육의 핵심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다. 더 나은 교육을 구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어른들이 좋은 사회나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공립·사립·오르타나티브 스쿨의 경계를 넘어 ‘소수자’라 여겨졌던 목소리에 사회 전체가 귀를 기울이고, 교육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학교든 학교 밖이든, 아이들이 진심으로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느냐, 우리 어른들이 묻히고 있다.

 

 

 

 

 

 

* 이 칼럼은 『(문예춘추 오피니언) 2025년의 논점 100』(文藝春秋, 2025)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세이신여자대학(聖心女子大学) 마키 교수(槙教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