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디아스포라의 멜로디
: 재일제주인 3세 PM케노비의 음악

# 들어가기: 국경과 세대를 넘나드는 디아스포라의 가시화
할아버지 출신 제주도
じいちゃん出身済州島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俺は行ったことないけど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홀연히 나타난 재일제주인 3세 래퍼 ‘PM 케노비(PM kenobi)’의 음악이 한일 양국의 청자들 사이에서 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SNS에서 우연히 접한 그의 트랙은 첫 소절부터 신선한 충격이었다. 붐뱁과 트랩을 넘나드는 세련된 힙합 비트 위에 얹어진 로우파이(*Lo-Fi, Low Fidelity의 약자로 음질이 낮고 잡음이 많은 곡)한 감성, 그리고 그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주 4·3’과 ‘이주사’라는 묵직한 역사적 키워드의 이질적인 조화는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힙합이라는 가장 트렌디한 장르를 차용한 그의 음악은 단순한 대중문화를 넘어, 한국과 일본 양국이 외면해 왔던 재일교포의 숨겨진 역사와 기억을 현재진행형의 서사로 소환한다. 그동안 재일교포의 예술은 주로 이방인으로서의 한(恨)이나 역사적 비극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PM 케노비는 자신을 역사적 피해자나 동정의 대상에 가두지 않고, 3세대 디아스포라 특유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세련된 비트 위에 당당하게 얹어낸다.
그의 음악은 한국인에게는 잊혀졌던 역사를, 일본인과 타국의 이민자들에게는 경계인으로서의 보편적 고충을 환기시키는 강력한 매개체다. 본 에세이는 PM 케노비 현상을 그의 '음악 그 자체'에 내재된 미학적·서사적 특징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가사에 담긴 역사적 기억과 언어의 혼종성, 그리고 힙합 장르를 통한 태도의 전환을 추적함으로써, 그의 음악이 현대 디아스포라 예술에서 지니는 독창적 가치를 규명할 것이다.
# 4·3의 기억과 할아버지를 향한 진혼곡 - 서사적 층위의 음악
PM케노비의 악곡에서 가장 묵직한 서사적 축을 담당하는 것은 '할아버지의 생애'와 '제주 4·3 사건'의 기억이다. 그는 KBS제주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노래가 '할아버지를 향한 작별인사'라고 밝혔듯,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거대한 시대의 비극을 음악으로 직조해낸다. 가사 속에서 PM 케노비의 가족이 겪은 은 단순히 교과서적인 역사 서술이 아니라, 거칠고 생생한 개인의 경험담으로 묘사된다.
전쟁 때 이야기를 하기 싫어했지, 형제를 많이 잃었댔지
戦時中のこと話したがらない 兄弟たくさん失った
돼지우리의 사료로 배를 채웠던 이야기를 웃으며 넘기셨지
豚小屋のエサで空腹満たした話を笑いながらしてた
그의 증조부는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함께 고향 제주로 돌아왔으나, 이내 4·3 사건으로 가족을 잃는 참혹한 비극을 맞닥뜨리며 결국 다시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오사카 이쿠노구(生野區)는 대표적인 재일제주인 밀집 지역이며, 일제강점기부터 제주와 오사카를 잇는 정기 연락선 '군대환(君が代丸)'을 타고 수많은 제주 사람이 가난을 피해, 그리고 제주 4·3에서 살아남기 위해 건너간 곳이다. 살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해야 했던 이 혹독한 이주의 역사. 세대를 거치며 축적된 이동과 단절의 경험은 현재 그의 음악을 통해 생생하게 흐르고 있다.
이러한 서사적 특징은 그의 음악에 진혼곡(Requiem)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 예컨대 뮤직비디오 속 그는 과장된 연출이나 자극적인 메시지 대신, 한 손에는 짜장라면 ‘짜슐랭’을, 다른 한 손에는 음료 ‘코코팜’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묵직한 베이스라인 위로 읊조리듯 내뱉는 가사에는 사실에 기반한 감정과 경험이 담담하게 녹아 있다. 거시적인 역사적 비극을 가장 미시적이고 사적인 가족의 서사로 풀어내며, 그의 음악은 이념적 잣대를 뛰어넘어 청자들에게 보편적인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낸다.
그 진정성은 국경을 넘어 다양하게 변주된다. 한국의 청자들에게는 가슴을 울리는 ‘진심’으로 다가가고, 일본의 일부 청자들에게는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받는 존재의 생생한 목소리’로 읽힌다. 나아가 대만, 중국,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의 청자들이 남긴 댓글 속에서도 그의 고백을 향한 지지와 공감의 물결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소비를 넘어, 근현대사의 상흔을 통과해 온 동아시아 전체가 언어의 장벽을 깨고 거대한 감정의 울림을 공유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 언어의 혼종성과 하이브리드 정체성의 발현
PM케노비 음악의 가장 두드러지는 형식적 특징은 가사에 나타나는 언어의 ‘혼종성(Hybridity)’이다. 그의 랩에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인위적인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하나의 입체적인 리듬을 빚어낸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화제곡 'Haraboji & Aboji'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제목에서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라는 한국어 고유의 단어를 로마자로 그대로 표기해낸 그는, 곡의 도입부에 '아이고 죽겠다'라는 한국어 내레이션을 과감하게 배치한다. 이 투박하고도 애절한 한탄은 단순한 언어의 차용을 넘어, 고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버텨낸 재일제주인 1·2세대의 삶과 한(恨)을 곡 전체의 정서적 배경으로 단숨에 내려앉히는 영리한 장치다.
한 마디 안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음절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독특한 운율(Rhyme)을 형성할 때, 청자는 강렬한 음악적 쾌감과 함께 묘한 노스탤지어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언어의 혼용은 어느 한 국가의 정체성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이분법적 국가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음악적 선언이기도 하다.
또, 곡의 도처에 흐르는 디아스포라 1세대 조부모의 기억과 정서는 정형화된 언어 너머의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제주의 핏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3세대의 정체성은 이 하이브리드 서사를 통해 가장 정확하게 구현된다. 그는 '완전한 한국인'이나 '완전한 일본인'이 되려 타협하지 않고, 두 문화가 격렬하게 교차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삶 자체를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로 긍정한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정체성의 발현은 양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불안과 결핍을,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문화적 자산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 수동적 대상에서 힙합의 주체적 화자로의 전환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듯한 나는 도대체 어디 사람
日本人でも韓国人でもないような俺は一体何者
일본 사회의 부스럼이지 나 랩으로 박치기, *리안성 (oh)
日本社会の腫れ物 俺ラップでパッチギ リ・アンソン (oh)
*재일한국인을 다룬 영화 '박치기(パッチギ, 2004)'의 주인공
과거 재일교포를 다룬 예술 작품이나 음악들은 대체로 슬픔과 체념, 혹은 고국을 향한 구슬픈 맹목적 그리움을 주된 정서로 삼았다. 아라이 에이치의 '청하의 길'과 같은 곡들이 지닌 애달픈 엔카적 정서나 70-80년대의 저항적 포크송이 디아스포라의 전형적인 음악적 문법이었다면, PM케노비는 '힙합'이라는 장르적 선택을 통해 서사의 태도를 180도 전환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과거의 음악이 구조적 폭력 앞에 무력했던 세대의 눈물을 대변했다면, 그의 음악은 그 상흔을 딛고 일어선 세대의 당당한 선언에 가깝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시각적 차이는 아래와 같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 과거의 디아스포라 음악 | PM 케노비의 디아스포라 힙합 | |
| 주요 정서 | 슬픔, 체념, 한(恨), 수동적 그리움 | 분노의 표출, 당당함, 자기증명 |
| 화자의 태도 | 역사적 폭력의 피해자, 이방인 | 역사적 서사의 주체, 자립적인 뮤지션 |
| 음악적 지향 | 과거에 대한 애도와 눈물 | 과거를 딛고 나아가는 현재와 미래 |
본래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는 미국 흑인 빈민가라는 소외된 공간에서 태동하여, 주류 사회의 억압에 맞서 자신을 증명하고 저항하는 데 최적화된 서사 양식이다. PM케노비는 이 힙합의 장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타인의 시선이나 국가 권력에 의해 규정되던 수동적인 디아스포라의 이미지를 완전히 해체한다.
그는 소수자로서 겪은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연민을 구하는 도구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드럼 비트 위에서 날카로운 '스웩'과 '펀치라인'으로 치환하며 주류 사회를 향해 거침없는 반격을 날린다. 억울한 피해자의 서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뱉어내는 이 쿨하고 당당한 태도는, 3세대 재일교포들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단순히 상속받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예술적으로 극복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주도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대목이다.
# 나가기: 디아스포라 음악의 성취와 뉴미디어의 조명
PM케노비의 음악은 역사적 상흔과 경계인의 삶을 하이브리드 언어와 힙합이라는 세련된 문법으로 엮어낸 현대 디아스포라 예술의 빛나는 성취다. 그의 멜로디는 제주 4·3이라는 과거의 비극을 진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층적인 정체성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현재 청년 세대의 주체적인 목소리로 나아갔다.
과거의 지상파 방송이나 주류 신문 등 올드 미디어의 철저한 게이트키핑(*Gatekeeping, 미디어 조직 내에서 기자나 편집자와 같은 결정권자에 의해 뉴스가 취사선택되는 과정) 아래에서라면, 특정 국가에 완벽히 동화되지 않은 그의 혼종적 서사는 일찌감치 '부적격' 판정을 받거나 외면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와 SNS,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의 알고리즘이라는 뉴미디어의 포용성은 이 경계인의 음악을 국경 너머의 수용자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미디어가 소수자를 불쌍한 존재로 '대상화'하여 보도하는 시대는 갔다. 이제 수용자들이 소수자의 '음악 자체'의 미학에 매료되어 자발적으로 소비하고 바이럴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신선한 충격을 목도한 뉴미디어 세대의 청자로서, 그리고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제주도민으로서 나는 앞으로 이러한 소수자들의 예술을 단순한 '일회성 유행'으로 소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플레이리스트에 그의 곡을 담아두고 반복해 듣는 행위는, 그 자체로 경계 위에서 분투하는 이들을 향한 지지이자 연대이다. PM 케노비의 음악이 이분법적 국경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다름을 긍정하는 초국경적 연대의 멜로디로 영원히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민소영. (2026.04.21). “뿌리는 제주도, 가본 적 없어도” 韓日 울린 재일3세 래퍼. KBS제주.
유영민. 경계를 넘나드는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음악 - 자이니치 코리안의 음악을 중심으로. 『음악학』 19.1 (2011): 7-27.
전진영. (2026.03.21). "내 노래는 할아버지를 향한 작별인사" 화제의 재일교포 래퍼 PM Kenobi 인터뷰 [일본人사이드]. 아시아경제.
주환선. (2026.03.08). "나는 누구일까" 묻는 재일동포 3세대, 힙합으로 답하다. 오마이뉴스.
글쓴이 소개 | 김현지
경희대학교 스포츠의학과 3학년 재학 중. 평소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제주도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재일제주인 3세 래퍼 'PM 케노비'의 음악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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