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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논평

AI 시대, 인문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by 배하영 2026. 6. 24.

AI 시대, 인문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실리콘밸리의 퍼지(Fuzzy)’ 논쟁을 통해 본 대학의 시장화와 인문학의 본령

 

1. 들어가기: "인문학은 병행하면 되는 것" 취업 사관학교가 된 대학과 낡은 휴머니즘 문법

 

 

 "기업이 원하니까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인문학은) 병행해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학생이 4, 대학원 과정까지 공부할 필요가 과연 있느냐. 기업 필요에 따라서 학과의 재조정도 있어야 한다."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안동대를 찾아 던졌던 이 발언은, 한국 사회가 인문사회과학을 바라보는 극단적인 도구주의와 천박한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오직 '기업 맞춤형 인재 양산'으로 규정하는 시각 속에서 당장 이윤이나 기술을 창출하지 못하는 '사유의 학문'은 소수의 엘리트만 남기고 도태시켜야 할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실제로 이러한 기조를 증명하듯 국가 R&D 예산 중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겨우 1% 남짓한 수준에 머물며 철저히 소외되어 왔고, 대학들은 앞다투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최근 4년간 서울에서만 300개가 넘는 인문사회계열 학과가 통폐합되고, 어문학이나 철학과가 폐과 수순을 밟는 현실은 극단적인 실용주의 앞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결코 단순한 엄살이 아님을 증명한다.

 

 게다가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의 폭발적인 발전은 이러한 기술 만능주의를 넘어 인간의 사유마저 기계에 종속시키는 전방위적 '기술의존증(혹은 사물화현상)'[1]에 빠져들고 있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장을 길어 올리는 시대에 인문학도를 자처하는 내면에는 "도대체 이 시대에 인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솔직한 막막함과 불안감이 엄습하곤 했다. 세상은 온통 코딩과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의 언어만을 습득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를 논할 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변호는 늘 "네 삶이 곧 인문학이다"라는 식의 탈역사화된 낭만주의나 지적 소비 활동에 그쳐왔던 것은 아닐까? 대학의 시장화와 교육의 기업화라는 파괴적인 물결 앞에서 인문학을 그저 개인의 위로나 교양의 수준으로 물신화(物神化)한 접근이야말로 오히려 인문학을 현실에서 무력하게 방치해 온 원인일지도 모른다. 이 막막한 현실과 비판적 의문 속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패러다임 변화를 다룬 한겨레 기사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이들은 공대생이 아니었다(2017)를 접하게 되었다. 본고는 이 기사에서 소개된 스콧 하틀리의 논의, 즉 기술의 정점이라는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문학도들의 활약상을 디딤돌 삼아 대학의 상업화와 학과 재조정이라는 폭력 속에서 위기에 처한 인문학이 어떻게 AI 시대의 가장 강력하고 대체 불가능한 '비판적 무기'로 귀환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 논증해 보고자 한다.

 

 

2. 기술의 뼈대에 인간의 맥락을 입히다

 

 해당 기사는 스탠퍼드 대학의 은어를 빌려 인문학도를 '퍼지(Fuzzy, 뜬구름 잡는 학문을 하는 사람)', 공학도를 '테키(Techie, 기술에 밝은 사람)'로 명명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전한다. 흔히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와 미래 산업이 철저히 테키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핵심 동력은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은 단지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활용해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기획하고 인간의 맥락을 입히는 것은 결국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를 깊이 탐구해 온 퍼지(인문학도)들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오늘날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최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생성형 AI 기반의 딥페이크 성범죄, 특정 인종과 계층에 편향된 배달·플랫폼 노동의 알고리즘 설계,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자 차별의 재생산 등은 기술이 통제력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파국을 생생히 보여준다. "공학을 배우며 인문학을 병행하면 된다"는 식의 정치권의 안일한 발상으로는 결코 이 거대한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코딩 능력이 아니라 기술이 복잡한 인간 사회의 역동과 불평등 구조 속에서 어떤 파급력을 미칠지 비판적으로 예측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거대한 맥락(Context)을 짚어내는 인문학적 통찰이야말로 기술의 폭주를 막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정부와 대학이 맹목적으로 이공계 중심의 '테키' 양성에만 몰두하고 학과를 상업적으로 구조조정하는 현상은 결국 기술에 목적과 방향성을 부여할 조타수를 스스로 꺾어버리는 근시안적인 행태에 불과하다. 인문학적 토대가 부재한 기술 발전은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인간을 도구화하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기사 속 실리콘밸리의 사례들은 냉철하게 경고하고 있다.

 

 

3. 한국 인문학 선도의 실패와 대학의 시장화라는 거대한 벽

 

 하지만 기사 너머 한국의 현실을 보면 냉정하게 되짚어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 왜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은 이러한 조타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밀려났는가?

 

 오늘날의 인문학은 대중이 갈구하는 시대적 질문과 진지하게 대결하며 비판적 학문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내야 한다. 시장주의 문법에 훨씬 익숙해진 일반 대중에게 '네 삶이 곧 인문학'이라는 식의 모호한 낭만주의는 더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냉정하게 자성하자면 그동안의 한국 인문학은 학문적 본분을 망각한 채 권력과 자본에 쉽게 잠식되어 왔다. 모순된 현실을 설명하지도 미래에 대한 실천적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강단 안의 안일한 말잔치에 그쳤던 무력함이 결국 인문학을 사회의 퇴조와 함께 스스로 몰락의 길로 이끈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되짚어보아야 한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닌 기업 맞춤형 인재를 생산하는 '취업 사관학교'로 전락하는 동안 인문학은 시장주의의 논리에 맞서 치열한 실천적 이론을 개발하기보다 상업화된 대중 강연이나 취업용 스펙 뒤로 숨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의 역설'과 맞닿아 있다. AI가 논문과 기사를 1초 만에 요약하고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시장주의에 포섭되지 않은 채 스스로 사유하고 직접 글을 쓰는 '인문학의 근육'이 절실하다. 글쓰기는 단순히 텍스트를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다. 글쓰기는 분절된 사회 문제들을 연결하여 자신만의 비판적 논리로 재구성하는 치열한 저항의 과정이다.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이 과정을 AI에게 외주화하거나 대학의 상업적 시스템에 순응해 버린다면 인문학은 존재 가치를 잃고 완전히 도태될 것이다.

 

 언젠가 사회학 전공 수업에서 통계 데이터의 이면에 숨겨진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읽어내고 구조적 모순을 한 편의 글로 엮어내기 위해 고뇌했던 경험들은 결코 쉽지 않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들이야말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물화(Reification)되지 않고, 현상의 이면을 응시할 수 있는 단단한 '사유의 근육'을 단련하는 과정이었음을 확신한다. 구조적 불평등을 읽어내고 모순된 사회에 균열을 내는 비판적 사유는 결코 기계나 시장의 효율성 논리가 대체할 수 없다.

 

 

4. 나가기: 삶으로 귀환하는 사회학, 세상을 비추는 인문학을 위하여

 

 실리콘밸리의 퍼지 논쟁을 다룬 기사를 읽고, 대학의 상업화와 인문학의 무력함을 꾸짖는 차가운 현실의 목소리들을 마주하며 역설적으로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분명한 좌표를 찾을 수 있었다. 시대가 효율성을 숭배하고 권력이 앞장서서 학과 구조조정을 종용할지라도 인문학은 결코 다른 학문의 부속품이나 취미가 될 수 없다. 인문학의 진짜 쓸모는 권력과 자본이 쳐놓은 낭만적인 위로의 그물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모순과 대결하며 기술과 시장의 눈먼 폭주를 제어하는 '가장 실천적인 생존의 무기'가 되는 데 있다.

 

 당장 이력서의 빈칸을 채워줄 자격증이나 코딩 기술이 더 유용해 보이는 압박 속에서도 우리는 흔들림 없이 사회를 관찰하고 사유하며 글을 써야 한다. 쓸모없어 보인다고 조롱받는 인문학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이윤과 효율성이라는 단일한 시장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기계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자본과 권력이 인문학의 퇴장을 종용하고 학계 스스로가 무력함에 빠져 있을지라도 사회학도로서 결코 '질문하는 태도''비판적인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낡은 낭만주의적 방어를 넘어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소외된 자들과 연대하는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 그것이 기술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기계나 노예가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서 내 지식을 삶으로 귀환시키고, 어두운 세상을 향해 인문학의 불빛을 비추는 가장 숭고한 저항일 것이다.

 

 

 

주석

[1] 기술의존증 (Technology Dependence)이란 인간이 일상적인 생활 방식뿐만 아니라 사유, 기억, 문제 해결 등 고유의 인지적 영역까지 디지털 기기와 알고리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을 뜻한다. 기술의 부재 시 극심한 무력감을 느끼거나 주체적인 판단 능력이 상실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사물화 현상 (Reification, alienation)은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의 주요 개념으로, 인간 사이의 주체적인 관계나 인간 고유의 정신적 사유 능력이 마치 '하나의 물건(기술이나 상품)'처럼 취급받는 주객전도 현상을 의미한다. AI 시대에 인간이 기계의 논리에 종속되어 수동적인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참고자료

한국대학신문 (202511월 보도): 등록금 동결 17년째인문사회 연구 기반 먼저 무너진다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86186,

한대신문 (20246월 보도): 벼랑 끝의 인문학, 실용 학문과 공존을 위해선https://www.hy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686

연합뉴스 (202510월 보도): 대학서 자취 감추는 인문사회학4년간 서울서만 330개 통폐합 

https://www.yna.co.kr/view/AKR20251004027500530)

한겨레 (20177월 보도): 문과, 이과 사라지고 통합교육인문학·코딩 능력 함께 중요https://www.hani.co.kr/arti/economy/it/804057.html

 

문과, 이과 사라지고 통합교육…인문학·코딩 능력 함께 중요

인문계 출신 취업 불안 가중 이과 전공은 유리할까? 미래에 유용할 직업적 능력은 문제 발견과 복합적 해결 능력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구직에 유망한 대학 전공이 무엇일지 관심이 높다.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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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배하영

사회학을 공부하며 한국과 일본 사회의 접점을 탐구하고, 언어와 번역을 통해 두 사회를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