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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논평

북극곰을 애도하며 로켓배송을 누르는 밤: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읽고

by ekdls53 2026. 6. 23.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기후변화의 정치학』. 에코리브르, 2009.

 


들어가기: 북극곰을 애도하며 로켓배송을 누르는 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집중호우와 같은 이상기후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던 중 『세카이(世界)』 2026년 3월호에 실린 「1.5℃를 넘어선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읽게 되었다. 이 기사에서는 1.5℃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 현실을 이야기하며, 앞으로의 사회와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기사를 읽으며 나 역시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기후위기에 관한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접할 때면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북극곰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안타까움을 느끼고, 폭염으로 인해 일상이 위협받는 미래를 상상하면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의 일상은 이러한 위기의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북극곰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후위기 영상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던 어느 날 밤, 나는 다음 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로켓배송을 이용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편리한 소비를 선택한 것이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지만, 기사를 읽고 난 뒤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왜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기존의 생활 방식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다. 기후위기를 개인의 실천 부족이 아닌 사회 구조와 정치의 문제로 분석하는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기든스의 역설과 편리한 소비의 시대
 『기후변화의 정치학』은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로 바라본다. 특히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기든스의 역설(Giddens’s Paradox)’이었다.
기든스는 기후변화의 위험은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험이 눈앞에 보일 정도가 되면 이미 늦을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기든스의 역설’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온난화를 인류가 직면한 중요한 위협으로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생활 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미래에 닥칠 위험을 현재의 문제처럼 실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 양상을 잘 보여준다. 나 역시 기후위기가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장 내일 제출해야 하는 과제와 시험, 취업 준비가 훨씬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대학생에게 2050년의 기후 재난은 추상적인 미래이지만, 내일의 발표와 성적은 현재의 문제다. 결국 사람들은 먼 미래의 위험보다 현재의 편리함과 생존을 우선시하게 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들어가기에서 언급한 ‘북극곰을 걱정하면서도 로켓배송을 이용했던 밤’이 떠올랐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편리함을 선택했던 내 모습은 기든스가 말한 역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전에는 이를 단순히 의지 부족이나 무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기든스는 이러한 현상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위험을 인식하는 방식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패스트패션에서 로켓배송까지: 소비사회와 기후위기
 기든스의 역설은 현대 소비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오늘날의 소비사회는 효율성과 속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로켓배송과 배달 애플리케이션은 소비자에게 즉각적인 만족을 제공하며, 패스트패션 산업은 저렴한 가격과 빠른 유행 변화를 통해 소비를 촉진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는 막대한 탄소 배출과 자원 낭비가 존재한다. 특히 패스트패션 산업은 대량 생산과 대량 폐기를 반복하며 환경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옷을 구매할 수 있지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일회용품과 과잉 포장 역시 마찬가지다. 편리함을 제공하는 서비스 뒤에는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사용되지만, 소비자는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소비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소비가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텀블러와 에코백,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환경을 위한 행동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실천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죄책감이 새로운 소비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환경 문제마저 소비의 대상으로 만드는 현대 소비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죄책감을 넘어 구조를 바라보기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텀블러 사용, 분리수거, 대중교통 이용과 같은 개인의 실천을 떠올린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정치학』은 기후위기를 개인의 도덕성이나 의지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로켓배송을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동시에 빠른 배송과 편리함을 중심으로 구축된 사회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고, 소비자들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소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일 수 있다.
기든스는 기후변화를 정치적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는 개인의 생활 습관만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정책, 산업 구조, 경제 시스템,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응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응 역시 개인의 실천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친환경적인 행동을 실천하지 못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왜 이러한 소비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가기: 기후위기와 연결된 문제들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였다. 이전까지 나는 기후위기를 주로 개인의 실천 문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든스는 기후위기가 정치와 경제, 산업 구조, 국제사회의 대응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고 설명한다.
북극곰의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로켓배송을 이용하는 모순은 어쩌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나는 이러한 행동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편리함과 속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 구조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기후위기는 환경 문제를 넘어 현대 사회 전체의 구조와 연결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순을 개인의 죄책감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반복되는지 이해하고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나의 시야를 개인의 실천에서 사회 구조로까지 확장시켜 주었으며,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위험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단순한 무관심이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방식과 사회 구조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참고 자료
●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기후변화의 정치학』. 홍욱희 옮김. 에코리브르, 2009.
● 다카무라 유카리(高村ゆかり)·에모리 세이타(江守正多). 「1.5℃를 넘어선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世界』 2026.03.



글쓴이 이다인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4학년 재학 중이며,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콘텐츠와 매체를 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