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로이드 패리의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를 중심으로

1. 들어가기: 매뉴얼 부재라는 진단을 넘어서
나는 한국에 살면서 지진이나 쓰나미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대재난이 일어난 경우 아이들의 인계 문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世界)》 2026년 3월호에 실린 기사 「子供の命を預かる」’를 통해 동일본대지진 당시 발생했던 '아동 인계 문제'의 구체적인 딜레마를 접하게 되었다. 해당 기사는 재난 상황에서 아이들을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것과 시설에서 선생님의 보호 아래에 있도록 남겨두는 것 중 어느 쪽도 완벽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던 당시의 혼란을 조명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장애나 고령 등으로 혼자서 대피할 수 없는 요지원자에 대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지진 역사상 최대의 규모인 9.0을 기록했으며, 파고가 10m 이상, 최대 높이 38.9m에 도달한 쓰나미의 발생으로 일본 동북지역인 태평양 연안에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시켰다. 이 지진으로 인해, 사망자 및 실종자가 모두 약 2만여명, 피난대피한 주민이 33만 명에 이르렀다.
「子供の命を預かる」에 따르면 2019년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3현을 조사한 결과, 동일본대지진 당시 보육원에서 보호자에게 인계한 후 보육 외 상황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아이는 12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와테현 오쓰시 보육원 야기자와 유미코 부원장의 인터뷰에서도 보호자에게 아이들을 인계한 후, 사망한 아이가 9명이나 된다고 언급한다. 반면, 유치원과 학교가 잘 못 내린 판단과 대응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가 존재한다. 대표 사례로 오가와 초등학교가 있다. 교원들은 아이들을 교정에 대기시키고, 뒷산으로 대피시키는 등의 적절한 피난 유도를 하지 않아 3.7km 떨어진 하구에서 밀려온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 학생 74명, 교직원 10명이 사망했다.
2025년 일본 유신자회의에서 재난 시 요지원자와 아이들을 보호자에게 어떻게 인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화두에 올랐지만, 끝내 실질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행정 기관들은 명확한 대처 방안을 강구하기보다 서로 책임을 미루는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고, 결국 피해는 오롯이 재난 현장에 남겨진 교사들과 가장 취약한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대형 재난을 겪을 때마다 구체적인 지침과 매뉴얼의 부재가 반복적으로 문제 시 되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나 역시, 현장의 혼란을 막고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명문화된 매뉴얼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구축하는 것이 최선의 정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처드 로이드 패리의 르포르타주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를 접하면서, 이러한 행정적 진단이 지닌 한계를 다시 사유하게 되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오카와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참사를 추적하는 이 책은, 재난 앞에서의 희생을 단순히 '문서화된 지침이 없어서 발생한 사고'로 환원할 때 우리가 놓치게 되는 구조적 모순을 조명한다. 시스템의 실패를 매뉴얼의 부재 탓으로만 돌리는 태도는, 때로 국가나 거대 조직이 마땅히 져야 할 본질적인 책임을 가려주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에, 본 보고서에서는 재난 대응 실패를 매뉴얼의 부실함으로만 보던 관점을 넘어 제도 이면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책임 회피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2. 시스템의 책임과 현장에 남겨진 개인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가 보여주는 문제는 단순히 재난 당시의 의사결정 실패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가 더 주목하는 것은 참사 이후 진실과 책임을 둘러싸고 전개된 과정이다. 책 속에 서술된 이시노마키시 공무원들과 교육청 관계자들을 악의적인 인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초유의 재난 속에서 밤낮없이 근무하며 행정 기능을 유지하려 노력했던 성실한 공직자들이었다. 관계자들도 자신의 가족, 집을 잃었음에도 실제로 교육청은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확인하고, 피난민을 위한 급식과 학교 운영 정보를 수집하는 등 막대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작가는 이들이 재난의 가해자라기보다 또 다른 피해자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참사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성실했던 공무원들도 조직의 실수와 직면하자 개인으로서의 공감보다 조직을 방어하려는 집단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가족 설명회에서 관계자들은 희생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과실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였다. 특히 오카와 초등학교 교장 가시바가 반복적으로 사죄의 뜻을 밝히면서도 과실 인정 여부에 대해서는 "제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답하는 장면은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조직의 법적 책임 사이의 긴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에서는 교육청 관계자가 지속적으로 발언을 조정하고 개입하는 모습을 기록하며, 진실 규명보다 조직 보호가 우선되는 관료 조직의 특성을 드러낸다.
오카와 초등학교 유가족들이 요구한 것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었다. 그들은 왜 아이들이 운동장에 머물러야 했는지, 왜 학생들이 스스로 산으로 대피하자는 의견을 내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학교와 교육청이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원했다. 그러나 행정기관은 책임 소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결국 유가족과 행정기관 사이에는 '진실 규명'과 '조직 방어'라는 서로 다른 목표가 형성되었다.
2014년 발표된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 역시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위원회는 학교와 교육청, 시 정부가 쓰나미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였고, 여러 단계의 실수가 겹쳐 참사가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동시에 특정 개인의 책임을 묻는 문제는 조사 범위에서 제외하였다. 보고서는 이러한 비극이 어느 학교에서도 발생할 수 있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재난 대응 체계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책임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효과도 낳았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징계받지 않았고, 일부 관계자는 이후 승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재난 이후 사회가 흔히 사용하는 '매뉴얼 부재'라는 설명의 한계를 보여준다. 참사의 원인을 매뉴얼의 부족이나 현장 교사의 순간적인 판단으로만 환원할 경우, 왜 부실한 매뉴얼이 방치되었는지, 왜 위험성이 공유되지 않았는지, 왜 조직은 책임을 분산시키려 했는지와 같은 구조적 질문은 사라지게 된다. 결국 오카와 초등학교 참사는 자연재해 자체의 비극일 뿐 아니라, 조직이 스스로의 실패를 어떻게 설명하고 관리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왜 책임은 끝없이 분산되고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가"에 있다.
3.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오카와 초등학교 참사가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는 단순히 한 학교의 잘못된 판단이나 특정 조직의 책임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사건은 재난 상황에서 누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진과 쓰나미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발생하는 자연현상이지만, 그 피해는 결코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특히 아동, 장애인, 고령자와 같이 스스로의 판단과 이동만으로 생존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람들, 요지원자들은 재난 상황에서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동일본대지진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내각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희생자 가운데 고령자의 비율이 매우 높았으며,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보다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이동하거나 위험 정보를 획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재난은 단순히 자연의 위협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평소 겪고 있던 이동권과 정보 접근성의 격차를 확대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내가 처음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 역시 아동 인계 문제였다. 오카와 초등학교의 학생들 역시 이러한 취약성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당시 생존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학생들은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최종적인 대피 결정 권한은 교사들에게 있었다. 학생들은 스스로 생존을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결국 어른들의 판단과 제도적 대응에 자신의 생명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아동이 재난 상황에서 가장 전형적인 요지원자임을 보여준다. 그들의 생존 가능성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주변 성인과 조직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재난 대응 체계는 여전히 독립적으로 이동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와 공공기관의 재난 훈련 역시 대체로 신속한 대피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이러한 배제 구조가 재난 상황에서는 생존 가능성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동일본대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가 누구를 기준으로 제도를 설계해 왔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오카와 초등학교 참사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재난의 희생은 단지 운이나 개인의 판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재난은 평소 사회가 취약한 사람들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다. 따라서 재난 대응의 핵심은 매뉴얼의 양을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을 제도의 중심에 놓고 정책과 훈련, 의사결정 체계를 설계하는 데 있어야 한다.
4. 나가기: 구조적 외면을 직시하는 인문학의 역할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까지 나는 재난 대응의 핵심이 보다 정교한 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를 읽으며 재난의 문제는 단순히 대응 절차의 부족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카와 초등학교 참사는 자연재해 자체의 비극인 동시에, 사회가 위험을 인식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방식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유가족들이 요구한 것이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설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직은 진실을 밝히기보다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이는 재난 이후에도 약자들이 다시 한 번 소외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의 역할은 중요하다. 인문학은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제도와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재난을 단순한 위기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와 책임을 묻는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다. 진정으로 안전한 사회란 더 많은 매뉴얼을 보유한 사회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제도를 점검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앞으로는 재난과 사회문제를 바라볼 때 표면적인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와 책임의 문제를 끊임없이 질문하고자 한다. 구조적 외면을 직시하려는 것은 불편하고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는 더 정의롭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박승준, 「지진관리체계 구축에 대한 한일 간 법제연구」, 동아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8.
- 리처드 로이드 패리,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 쓰나미에 빼앗긴 아이들의 목소리』, 조영 옮김, 알마, 2015.
- 타부치 시오리(田淵紫織), 「子供の命を預かる」, 『世界』 , 岩波書店, 2026.3.
- 内閣府, 『平成24年版 障害者白書』, 内閣府, 2012.
[글쓴이 소개]
조유빈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4학년 재학 중으로, 한국과 일본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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