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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논평

왜 여성은 떠나지 못하는가?: 영화로 본 한·일 이혼 여성의 ‘아웃사이드 옵션’ 상실

by mhj050829 2026. 6. 20.

오모리 다쓰시 감독의 영화 <마더>의 한 장면 (http://t402.ndsof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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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서 결혼은 낭만적 사랑의 결실로 표상되지만, 이면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치밀하게 얽힌 협상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한국과 일본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빈곤과 양육 부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왜 많은 여성이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도 쉽게 이혼을 선택하지 못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에세이의 문제 의식은 일본의 종합 월간지 《세카이(世界) 20263월호에 게재된  오쿠야마 요코 (山陽子)의 최신 논의, 「성별 격차는 가정에서 발생하는가」를 접하며 구체화되었다. 그는 노동을 다루는 가족경제학의 관점에서, 개인이 관계 밖에서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대 효용, '아웃사이드 옵션(Outside Option)'의 크기가 가족 내 젠더 권력을 결정한다고 역설한다. 이 비상구 같은 선택지가 넓고 튼튼할수록 부당한 대우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양국 모두 표면적으로는 양성평등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인 제도는 여성의 아웃사이드 옵션을 체계적으로 축소함으로써 이들이 불평등한 관계망을 '떠날 수 없도록' 옭아매고 있다. 이러한 양국 제도의 모순은 동시대 여성들의 삶을 다룬 서사 텍스트 속에서 가장 첨예하게 재현된다. 따라서 본고는 오쿠야마 요코가 제시한 '아웃사이드 옵션'을 핵심 분석 렌즈로 삼아, 한국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2016)와 일본 영화 <마더>(2020)를 교차 분석하고자 한다. 두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교섭력 상실의 과정을 비교함으로써, 한·일 양국의 이혼 관련 제도가 내포한 구조적 폭력성과 한계를 규명할 것이다.

 

아웃사이드 옵션과 양국의 제도적 맹점

  가족경제학에서 '아웃사이드 옵션'이란 현재의 관계(결혼)를 종료했을 때 개인이 획득할 수 있는 바깥 사회에서의 '이혼 후 경제적 자립 가능성'을 의미한다. 오쿠야마 요코의 논의에 따르면, 이혼 후에도 독립적인 삶이 보장된다면 개인은 부당한 대우를 거부할 수 있는 강력한 교섭력(Bargaining Power)을 갖는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제도는 이 아웃사이드 옵션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  일본의 경우 '배우자 공제 제도(103만 엔의 벽)'와 같은 가구 단위의 세제 혜택이 기혼 여성의 노동을 비정규직 파트타임으로 억제하여 이혼 후 정규 노동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한다.
  • 한국 역시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와 가혹한 '경력단절(M자 곡선)' 구조가 존재하며, 이혼 후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방치되어 있다.

  양국의 복지 제도는 개인이 아닌 '정상가족'을 기본 단위로 설계되어 있기에, 이 울타리를 이탈한 여성은 즉각적인 경제적 생존 위기에 직면한다. 제도가 만들어낸 이혼 후 빈곤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양국 여성의 교섭력을 무력화하고 있으며, 결국 취약해진 자립 기반이 여성들로 하여금 종속적 관계를 인내하거나 또 다른 착취적 관계로 도피하게 만드는 주 원인이 된다.

 

한국의 재현: 워킹맘의 고립과 제도의 사각지대 (<미씽: 사라진 여자>)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는 이혼 후 양육권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지선'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아웃사이드 옵션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 고발한다. 전문직 여성인 지선조차 이혼 후 경제적 자립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을 제공받지 못한다. 그녀는 경제력으로 무장한 전 남편과 시댁에 의해 끊임없이 양육권을 위협받으며, 공공 보육의 부재 속에서 사적 보육(조선족 보모)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텍스트 속에서 지선의 고립은 사회적 멸시와 공적 보호의 전무함을 통해 시각화된다. 이혼 소송 중 전 남편의 변호사는 지선의 늦은 퇴근과 직장 생활을 기만하며 "애 엄마가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데, 양육권이 이쪽으로 오는 게 상식 아닙니까?"라며 압박하고, 직장 상사는 아이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그녀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아이가 사라진 긴박한 상황에서도 국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찰은 지선의 신고를 접하고도 이를 단순한 '이혼 양육권 분쟁으로 인한 가출' 혹은 '아이 엄마의 과민반응'으로 치부하며 수사를 지연시킨다. "남편이랑 싸우고 애 데리고 숨은 거 아니에요?"라는 경찰의 대사는 사적 영역의 갈등을 공권력이 어떻게 방치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선이 겪는 딜레마는 한국 사회에서 '이혼 후 자립'을 선택한 여성이 노동 시장과 양육 제도 양쪽에서 얼마나 철저히 고립되는지를 증명한다. 법은 양성평등을 말하지만, 현실의 경제적·사회적 교섭력은 여전히 가부장적 권력을 가진 남성 측에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일본의 재현: 붕괴된 선택지와 빈곤이 낳은 인간성 상실 (<마더>)

  오모리 다쓰시 감독의 <마더>는 일본 사회에서 아웃사이드 옵션이 완전히 붕괴한 여성의 삶이 얼마나 참혹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아키코'는 이혼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여러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기생하며 살아간다. 한국의 지선이 어떻게든 노동 시장에서 버티려 애썼던 것과 달리, 아키코는 합법적인 자립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포기한 채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인물이다.

  아키코의 삶에서 아웃사이드 옵션의 전무함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 슈헤이에 대한 극단적인 가스라이팅과 착취로 이어진다. 그녀는 친척과 주위의 원조가 끊기자 어린 슈헤이에게 돈을 빌려오라고 강요하며,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슈헤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해"라는 말로 아이의 정신을 지배한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그녀에게 자식은 모성의 대상이 아닌, 신체적·정서적 생존 도구이다.

  아키코는 성장한 슈헤이에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수 있지?"라며 돈을 위해 자신의 친부모(슈헤이의 조부모)를 살해하도록 사주하기에 이른다. 이 범죄의 기저에는 사회적 구명줄이 전무한 상태에서 발생한 인간성의 완전한 파멸이 존재한다. 이는 개인의 도덕적 타락을 넘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혼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바깥의 선택지'가 범죄와 착취 외에는 남아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잔혹한 서사이다.

 

나가기: .일 비교 및 아웃사이드 옵션의 복원을 위한 제언

  두 텍스트를 교차 분석하면, 한·일 양국의 젠더 권력 구조와 이혼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근본적인 한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미씽>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발버둥 치는 고립'을 재현했다면, 일본의 <마더> '선택지가 붕괴된 끝에 마주한 인간성 상실'을 재현한다. 지선은 노동 시장 안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있는 주체이지만, 국가가 공공 보육이나 양육비 이행 강제 같은 사후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아 시스템의 공백 속에서 무너진다.

  반면 아키코는 배우자 공제 제도와 같은 구조적 장치로 인해 결혼 생활 중 비정규직 노동에만 묶여 있었고, 이로 인해 이혼 후 정상적인 노동 시장에 진입할 기회 자체를 원천 차단당한다. 이는 단순히 안전망의 느슨함을 넘어, 제도가 여성을 합법적 자립이 불가능한 구조로 밀어 넣어 인간성마저 파괴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구분 한국 (<미씽: 사라진 여자>) 일본 (<마더>)
주요 인물 및 상황 지선 (이혼 후 양육권을 지키려는 전문직 워킹맘) 아키코 (이혼 후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기생하는 무직 여성)
아웃사이드 옵션 상태 제도의 사각지대로 인한 고립 및 취약성 합법적 자립 가능성의 완전한 붕괴
구조적 맹점 및 공백 공공 보육의 부재, 성별 임금 격차, 양육비 미지급 방치 배우자 공제 제도(103만 엔의 벽), 복지 구명줄 부재
서사적 파국 사적 보육 전면 의존 및 공권력의 방치 속 고립 자녀 정서적 지배 및 생존을 위한 극단적 범죄 사주
실증 통계 데이터 여성 경력단절(M자 곡선), 양육비 미지급률 70% 상회 모자가정 상대적 빈곤율 50% 초과 (OECD 최하위권)

 

  이러한 서사의 비극성은 실제 양국의 객관적 통계 데이터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한국의 경우, 출산 및 육아기로 고착화된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으로 인해 30대 여성의 고용률이 급감하며, 이혼 후 한부모 가구의 양육비 미지급률은 여전히 70%를 상회하여 법적 강제성의 실효성이 부재함을 증명한다. 일본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아서, 가구주가 여성인 모자가정(母子家庭)의 상대적 빈곤율은 50%를 넘어서며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미씽> <마더>가 재현한 비극적 서사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 제도의 구조적 실패에 대한 고발이다.
  '
왜 그들은 떠날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회가 그들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외부의 비상구를 원천적으로 폐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혼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징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 모두 아웃사이드 옵션의 복원이 시급하다.

  따라서 첫째,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공공 보육 시스템을 확충하여 이혼 후에도 여성이 경력 단절 없이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한국의 경우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양육비를 우선 대지급하고 전 배우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법적 강제성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왜 진작 관계를 끝내지 못했는가라고 개인을 탓하기 전에, 개인이 안전하게 걸어 나올 수 있는 바깥세상의 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하는 것만이 스크린 속 비극을 현실에서 멈추게 하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글쓴이 모현진

경희대학교 문화엔터테인먼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며, 일본어학과를 복수 전공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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