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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논평

내면화된 에이지즘을 극복한 정체성 형성: <로스트 케어>와 <소풍>을 통한 한,일 영화 속 노년의 소멸과 존엄

by kyw24765658 2026. 6. 21.

 

출처: 통계청 '2024 고령자 통계'

들어가며

2026년 현재 한국 사회는 인구통계학적 전환점인 초고령사회에 완전히 진입했으나 미디어와 대중의 무의식 속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과거의 부정적 고정관념이자 차별 기제인 에이지즘(Ageism, 연령차별주의)’에 머물러 있다. 주류 미디어가 매일같이 생산하고 유포하는 노년의 풍경은 대개 입체적인 삶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채 두 가지의 극단적인 프레임으로 수렴되곤 한다. 뉴스나 시사 대담 프로그램 등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고령층은 대개 인구 절벽의 주범이자 국가 재정 고갈을 가속화하는 생산성 낮은 부양 부담 혹은 거시 경제의 잠재적 리스크라는 차가운 수치와 지표로 대상화된다. 언론이 흔히 사용하는 '은빛 쓰나미''부양비 폭탄'과 같은 자극적인 용어들은 노년층의 증가를 마치 국가적 재난이나 위협처럼 묘사한다.

  반면 드라마나 교양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노인은 디지털 기술에 무지하고 고집스러우며 타인의 보호와 돌봄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이처럼 현대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쇠퇴와 비용의 상징으로서의 노인이미지는 초고령사회가 안고 있는 시스템의 결함을 노년층 개인의 낙후로 전가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의 반복적인 재현이 결국 고령층 스스로 자신이 사회의 짐이라는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내면화된 에이지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글의 관심은 이렇듯 노년이라는 고유한 생의 단계를 단순한 동정의 대상이나 경제적 부채로만 환원하는 미디어 담론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짚어보는 데에 있다. 나아가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나이 듦이 가진 본연의 주체성과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탐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의 변화를 겪어온 일본의 미디어 텍스트인 마에다 데쓰 감독의 영화 <로스트 케어>(2023)를 살펴볼 것이다. 이와 동시에 최근 한국 사회의 노년 현실과 존엄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김용균 감독의 영화 <소풍>(2024)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양국 미디어가 재현하는 에이지즘의 양상을 입체적으로 비교하며 생각해 보고자 한다.

<로스트 케어>의 한 장면, https://youtu.be/v1RRvqqYXEg?si=3f_ffrKaIHpxhBZV

<로스트 케어>: 비용으로 계산된 생명

  영화 <로스트 케어>는 노년을 오직 사회적 비용과 돌봄의 부담이라는 도구적 가치로만 규정하는 시선이 극단에 달했을 때 어떤 비극이 도래하는지를 예리하게 고발하는 작품이다. 치매 노인들을 정성껏 돌보던 성실한 요양보호사 '시바 쇼고'가 역설적이게도 간병 지옥에 갇힌 노인과 그 가족들을 고통에서 구원한다는 명목하에 42명에 달하는 고령자들을 살해하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큰 충격을 안긴다. 범인은 자신의 행위가 살인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가계를 구하고 노인에게 평온을 선물하는 '상실의 돌봄'이자 구제책이었다고 당당히 항변한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개인의 광기인가 아니면 사회의 냉담함인가. 영화가 추적하는 이 연쇄살인은 결코 한 개인의 주관적인 일탈로만 볼 수 없다. 법의 심판을 대변하는 검사 '오토모'와 살인범 '시바'가 나누는 논쟁은 이 작품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지점이다. 시바의 논리는 역설적이게도 주류 미디어와 경제학이 유포해 온 생산성 없는 고령자는 사회적 손실이자 청년 세대의 미래를 갉아먹는 무거운 짐이라는 부조리한 프레임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국가와 사회가 비용 효율성을 이유로 돌봄의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떠넘길 때 가계는 파산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마모된다. 시바는 미디어가 외면한 그 간병 독박의 현장에서 사회적 에이지즘을 극단적인 행동주의(실제로 노인들을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로 체화한 인물인 것이다. 영화는 화려한 경제 지표 이면에 도사린 현대 사회의 냉혹한 노년의 상품화를 직시하게 만들며 시스템이 포기한 생존의 무게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폭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인공 시바의 극단적인 행위 이면에는 사회가 주입한 '노인=무가치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 속 시바의 아버지는 치매 속에서 "인간의 존엄이 남아있을 때 보내달라"며 죽음을 청하고 시바는 이를 '구원'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영화가 보여주는 존엄은 삶을 포기함으로써만 성립하는 극단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이는 노년을 스스로 자아를 유지하거나 정체성을 새로 형성할 수 없는 무력한 종말의 단계로 규정하는 또 다른 에이지즘의 변형일 뿐이다. ​진정한 에이지즘의 극복은 노년을 단지 '비극적 간병의 대상'이나 '존엄사의 객체'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인간의 정체성 형성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노년은 오히려 지나온 삶을 성찰하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치열하게 묻고 답하는 주체적인 자기 형성의 시기이다. 따라서 삶의 끝맺음이란 허무한 소멸이나 생의 중단이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강요하던 사회적 압박과 이별하고 온전한 내면의 주체로서 남은 삶을 더 의미 있고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정체성의 시작'이어야 한다.

 

체념적 존엄이 초래한 무력한 소멸

  허나 <로스트 케어>에서는 삶의 끝맺음을 허무한 소멸이나 생의 중단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한계와 비극이 가장 집약되어 드러나는 결정적인 순간은 주인공 시바가 뇌경색과 지독한 치매에 걸린 자신의 아버지를 간병하는 장면이다. 지독한 가난과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의 피로 속에서 시바와 아버지는 과거 행복했던 시절이 담긴 옛날 사진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빛바랜 사진 속 당당하고 온전했던 과거의 정체성과 치매로 인해 대소변조차 스스로 가리지 못하는 현재의 비참한 정체성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대비되는 순간이다. ​사진첩을 덮으며 아버지는 "난 정상이 아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며 눈물을 흘리고 "인간의 존엄이 남아있을 때 제발 나를 보내다오"라고 아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건넨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가 인지한 존엄이란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 적극적인 힘이 아니다. 사회가 주입한 에이지즘의 시선대로 자신이 자식과 사회에 무가치한 부양 부담이 되었다는 깊은 죄책감과 허무함 속에서 내린 결론일 뿐이다. 결국 이 장면에서 영화가 재현하는 끝맺음은 삶의 아름다운 매듭이나 주체적인 완성(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무력해진 육체와 정신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중단해 버리는 비극적인 소멸에 가깝다. 아버지는 더 이상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에이지즘이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생을 마감해달라고 외친 것이다. 시바는 이 체념적인 목소리를 구원이라 믿었기에 이후 42명의 노인들에게도 똑같이 주체성을 박탈하는 강제적인 생의 중단을 행하게 된다. 이렇듯 <로스트 케어>가 타인의 손에 의해 진정한 정체성을 잃는 수동적 소멸의 비극을 보여주었다면 김용균 감독의 영화 <소풍>(2024)은 노년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스스로 정체성을 형성하며 주체적인 끝맺음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소풍>의 한 장면, https://youtu.be/9SF7-PwzJK0?si=g1juyv_jAe5RDxsC

<소풍>: 고독의 족쇄를 끊어내는 주체적인 정체성 형성

  영화 <소풍>은 홀로 살아가는 고령의 은심이 신체적 퇴행과 가족 안에서 겪는 철저한 소외를 조명하며 시작된다. 영화 전반부의 은심은 허리 통증과 쇠약해지는 신체라는 내적 한계 속에서 낡은 집을 지키며 깊은 사회적 고립을 마주한다. 그녀가 처한 현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정한 연령차별주의를 고스란히 투영하는데 하나뿐인 아들의 재산 갈취와 며느리의 요양원 권유 압박은 노년을 단지 생산성과 비용으로만 재단하는 냉혹한 에이지즘의 징후다. 자신을 오직 무가치한 부양 부담으로 가두려는 안팎의 압박 속에서 은심에게 삶은 더 이상 나아갈 곳 없는 정체기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영화는 은심을 비극의 객체로만 남겨두지 않고 오랜 세월 삶을 공유해 온 절친 금순과의 만남을 통해 상황의 흐름을 전환한다. 자식들이 권유한 요양원이라는 원치않은 압박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대신 두 노년이 능동적으로 선택한 고향으로의 여정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도피가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역할과 이별하는 주체적인 정체성 선언이 된다. 고향이라는 공간에 도달한 순간 이들은 자식의 부모나 돌봄의 대상이라는 사회적 족쇄에서 완벽히 탈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일상에 설레고 지난 삶을 성찰하는 시를 쓰는 등 끊임없이 내면의 자아를 확장해 나간다. , 에이지즘이 지배하는 비정한 현실을 걷어낸 채 나이가 들어서도 정체성 형성이 결코 중단되지 않는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고향에서의 시간은 쇠퇴나 종말이 아닌 온전한 내면의 주체로서 어떤 어른으로 존재할 것인가를 스스로 증명해 내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수동적 소멸인가 능동적 결말인가: 두 영화가 보여주는 정체성의 갈림길

  이처럼 <로스트 케어><소풍>은 한일 양국 미디어가 보여주는 노년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비교하게 만든다.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은 현대 사회가 노인을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기준만으로 평가하는 냉혹한 에이지즘의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는 점이다. 양국 사회 속 노인들은 공통적으로 가족과 시스템으로부터 무가치한 부양 부담이자 치워야 할 짐으로 취급받는 소외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 냉혹한 현실에 맞서 자아를 유지하고 삶을 끝맺는 방식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로스트 케어> 속 노년은 치매와 가난이라는 한계 앞에 스스로 무력해진 채 타인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수동적인 비극으로 귀결된다. 이들에게 끝맺음이란 정체성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완전히 박탈당한 허무한 중단일 뿐이다. ​반면 <소풍>의 노년은 신체적인 한계과 요양원 권유 압박 속에서도 타인에게 삶의 주체성을 넘겨주지 않는다. 이들은 고향이라는 공간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쓰고 내면을 성찰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 적극적인 주체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생의 마무리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체념적 중단이 아니다. 사회가 주입한 에이지즘의 족쇄와 온전히 이별하고 가장 나다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내며 삶을 완성하는 주체적인 끝맺음이자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한국 노인 복지의 현주소: '양적 부양'의 확대와 '질적 소외'의 지속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인 복지 현실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보건복지부를 통해 추진 중인 다채로운 정책 기조를 살펴보면 취약 노인을 위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의 수혜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시니어의 경력을 활용한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다각화하는 등 제도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각 지자체에서도 노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발히 추진하는 점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는 노년을 단지 돌봄과 수혜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보호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탐색하게 하려는 유의미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다수의 복지 정책은 여전히 양적인 일자리 제공이나 일시적인 여가 시간 때우기식 지원에 편중되어 있다는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실제로 많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고령층 복지 프로그램은 노인들의 깊은 연륜이나 지적 욕구를 채워주기보다 복지관 안에서의 단순한 노래 교실이나 거리 쓰레기 줍기와 같은 단기 공공근로 제도를 양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결국 노년층의 구조적 소외를 은폐하는 일시적인 미봉책이나 현실의 소외를 잠시 잊게 만드는 임시방편에 가깝다. 그러므로 노년이 한 인간으로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본질적이고 질적인 지원 체계는 여전히 부족한 셈이다.

 

진정한 에이지즘 극복을 위한 내면적 자율성의 확립

  필자는 진정한 에이지즘의 극복과 복지 패러다임의 완성은 노년을 단지 안전하게 관리하고 부양하는 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인간의 정체성 형성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며 오히려 지나온 삶을 바탕으로 어떤 어른으로 존재할 것인가를 주체적으로 질문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제도적 대안은 노년이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나라는 사람의 자아를 유지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며 삶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적극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내면의 자율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 한 인간이 생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형성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가장 시급한 과제다.

 

 


[옮긴이 소개]

강윤우

일본어학과 2학년 재학 중이며 일본 역사,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특히 매체 속에 투영된 한국과 일본의 사회적 특징, 이슈를 탐구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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